[설봉칼럼] 원효의 화쟁론(和諍論)│은종원 인제당 한의원 원장
[설봉칼럼] 원효의 화쟁론(和諍論)│은종원 인제당 한의원 원장
  • 이천설봉신문
  • 승인 2024.02.2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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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의 화쟁론(和諍論)
 

은  종  원인제당 한의원 원장
은 종 원
인제당 한의원 원장

갑진년 청룡의 해를 맞은 어느 날 선덕여왕 포스의 문화심리학자가 뜬금없이 내게 말을 던진다. 그대가 가장 좋아하는 글자 하나를 한번 써보라고 종이와 펜을 불쑥 내민다.

난 망설임 없이 ‘화’라고 써주었다. 물론 불 화(火) 자가 아니라 화할 화(和) 자다. 이는 서로 뜻이 맞아 호응하고 화합한다는 뜻이다. 일상적으로 화해·화합·조화·평화·화평 등에 주로 쓴다. 반대말은 불화·반목·질시·대립·갈등 등이 해당할 수 있겠다. 

화할 화(和)란 글자가 벼 화(禾) 자에 입 구(口) 자로 된 것만 보아도 역시 사람 사는데 먹는 게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입에 맞는 음식을 든든히 먹고 난 뒤 만족감에 찬 얼굴 표정이 가장 평화롭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위가 큰 양명체질은 욕구불만에 차서 싸울 일이 있다가도 배불리 먹고 나면 시비하는 마음이 없어지기도 하니 현명한 아내는 밥상부터 차려주고 할 얘기를 하면 될 법하다. 먹이를 뜯던 사자도 배가 든든히 차고 나면 꼬리를 건드리며 심기를 거슬리는 하이에나한테 슬며시 자리를 양보하니 말이다. 

어르신께 진지 잡수셨냐고 여쭙고 자식들에게 밥 먹었냐고 묻는 우리의 인사말 속엔 몸과 마음이 편안하신지 건강을 살펴보는 마음의 뜻이 담겨있다고 본다.

흔히 갱년기 여성이나 노년을 맞이한 분이 ‘요즘 입맛이 전혀 없다’란 말은 단순히 ‘밥맛이 없다’는 말이 아니고 ‘살맛이 안 난다’란 의미로 마음이 우울하고 외롭고 불편하다는 표현일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예부터 ‘쌀독에서 인심 난다’ 말한 것처럼 경제가 잘 돌아가고 주머니에 여유가 생기면 저잣거리의 살벌한 시비 사건도 줄어들 것이다. 

그중에서도 인화(人和)가 제일 우선인데, 서로 화합이 되려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고 주고받을 수 있어야 진정한 화합과 조화로운 모습이 살아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부부가 등산을 간다 해도 남편은 산 정상에 올라서 야호- 하고 외치고 내려와야 속이 후련하다. 무릎이 아픈 아내는 산 밑에서 약수 한 모금을 마시고, 마당바위에 앉아 새소리를 들으며 여유롭게 쉬다가 둘이 만나 내려온다면 둘 다 만족이 되는 산행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선택지를 허용하는 데서 화합이 이뤄진다. 아들과 아버지가 산에 오를 때 앞에서 아버지가 아들 손을 잡아당기고 아들은 끌려간다면 둘 다 힘들어 금방 지치게 마련이다. 그냥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오르거나 뒤에서 등을 받쳐주면서 올라간다면 두 사람 다 훨씬 산행이 수월할 것이다.

여기서 원효의 화쟁(和諍) 사상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화(和)는 화해·화합·조화를 말하고 쟁(諍)은 자기 스스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말을 의미한다. 원효가 살던 신라시대도 진골 성골의 계급사회로 그 아래 6두품이던 원효 또한 소외된 설움을 많이 겪었으리라. 

그의 저서 <대승기신론 소>에서 ‘우리 본래의 마음은 一心 한마음인데, 고요한 바다에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 파도와 바닷물이 따로 둘이 아닌 것처럼, 중생의 一心에도 깨달음의 경지인 진여심(眞如心)과 어리석은 무명과 집착에 의한 생멸심(生滅心)이 서로 분열되고는 있으나 이러한 진여심과 생멸심이 따로 둘이 아닌 一心 한마음’이라고 설파해 화쟁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의 화쟁은 정반합의 원리에서 정(正)에 화(和)를 두고 반(反)에 쟁(諍)을 두어 합(合)으로 타협하는 게 아니라 정(正)과 반(反)이 대립할 때 오히려 근원을 꿰뚫어 이 둘이 불이(不二)라는 것을 체득함으로써 쟁(諍)도 결국에는 화(和)로 동화시켜 나가는 ‘불이의 화쟁론’인 것이다. 

여기서 원효의 화쟁론은 인간세상의 화와 쟁의 양면성이 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찌 바다에 파도가 없을 수 있겠는가? 파도가 없는 바다가 어디 있겠느냐는 말이다. 우리 중생의 마음에도 늘 번뇌와 갈등과 대립이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얘기다. 심리학에서도 무의식적 본능에 두 가지가 있으니, 자기를 사랑하고 아끼는 에로스의 본능과 자신을 해체하고 파괴하려는 타나토스의 본능이 늘 꿈틀거린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과 갈등과 방황과 번뇌의 파도가 그 자체로 진흙탕 속에 머물러 진일보하지 못한다면 그런 개인이나 가정, 사회는 에너지 소모와 사회적 비용만 낭비하게 되는 그야말로 고치기 어려운 중병에 시달리게 된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은가 생각한다. 국민 안위와 민생은 안중에도 없이 이분법적 흑백논리로 갈라치기 하는 세력정치가 꽤나 오랫동안 판을 치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다 좋다. 진정한 보수 진정한 진보의 사회적 도덕적 가치논쟁은 어디로 사라지고 그야말로 가짜뉴스를 양산해 상대를 폄훼하고 민의를 왜곡하고 목적을 위해선 야비한 수단도 정당화하는 진영논리의 극한 대립은 우리 사회를 소모적 정쟁으로 몰아가고 많은 국민들을 정치에 불편감을 갖게 하는 게 눈앞의 현실이다. 국회의 여야 할 것 없이 국가의 안위와 민생경제를 말로만 외쳐대고 정작 민심의 소리는 외면하고 절차적 민주과정을 뭉개버리는 의회 정치꾼들은 이번 총선에서 모두 물갈이해야 한다는 소리가 들리는 지경이다. 

높이 솟은 산도 낮게 흐르는 물이 함께 라야 비로소 산수가 어우러진 명산이 된다. 산은 산대로 최고이고, 물은 물대로 최고라서 모든 존재는 차별이 없이 귀하고 평등한 존재가치를 지니고 있다. 동시에 모든 생명은 인드라 망 그물코처럼 연결되어 있어 서로 상의상존(相依相存)함으로써 그 존재가 성립될 수 있다. 만약 지구상에 햇빛과 공기와 물과 동식물이 없다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과연 한순간이라도 존재할 수 있겠나?

한 발 더 나아가 보면, 성인의 진리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신도가 있어야만 스님, 목사, 신부님도 존재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불편한 환자가 있어야만 의료인도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국민들이 있어 당신들 정치인도 존재하는 거라는 관계의 진실을 돌아볼 일이다. 하늘은 땅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고 땅은 하늘을 통해서 존재가 빛나듯이 남자는 여자를 통해서 온전해지고 여자는 남자를 통해서 그 존재 가치가 더욱 빛나게 되는 법이다. 

이처럼 현상계의 우주 법칙은 음양 양극성으로 대립하고 견제하고 의존하는 대대관계로 존재하고 순환한다는 원리인데, 그래서 남녀 부부간의 상반된 만남이 가정이라는 상생을 만들어내고 보수진보의 상충된 만남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며 발전적인 역사의 수레바퀴가 지금에 이르렀고 미래를 향해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음양의 이치는 언뜻 상반되고 전혀 다른 듯 보이나 크게 보면 태극(太極)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음을 깨닫게 된다. 바다라는 대양 속에 수많은 어종이 살고 있듯이 우리 모두는 하나의 하늘 아래 공기를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존의 생생한 현실을 인정하자. 천지일월의 기운 덕분에 만 생명이 살아갈 수 있듯이 국가가 건재해야 국민도 있고 여야 정치도 있는 거다. 나와 다름을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읽지 않는다면, 또 차이를 차별로 인식하고 대하지 않는다면 극한의 대립갈등이 아닌 선의의 경쟁과 견제를 통해 법치의 균형과 민주의 조화로움으로 방향타를 돌려 가볼 수 있지 않겠나? 

중동과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과 대만의 양안문제, 북한의 핵 안보위협 등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에 지정학적으로 중심에 놓여있는 한국이 풀어나가야 할 수많은 난제와 갈등 상황의 지속은 우리 국민들을 한없이 불안하게 한다. 하지만 환난과 격동의 역사를 수없이 헤치고 이겨내며 북한, 필리핀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를 이뤄낸 근성과 저력의 민족 그 이름 대한민국이지 않은가? 

바야흐로 따스한 봄이다. 봄의 다른 이름은 희망이다. 이제는 해묵은 논쟁과 이념의 갈등과 차별의 어두운 늪을 벗어나 안전과 평화와 번영을 갈망하는 우리 민족이 다시금 홍익인간의 양심가치가 존중되고 왜곡된 상고역사 교육이 바로잡히고 밝은 사회를 지향하는 목민정치가 실현됨으로써 국민들이 희망과 용기를 품고 살 맛 나는 이화세계를 만들어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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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마침내 푸른 젊음의 용처럼 국운이 비상하고 그렇게 평화통일을 향한 화해의 초석을 다져가는 새봄이 되었으면 하는 게 우리 모두의 바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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