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칼럼] 가족│김상배 변호사
[설봉칼럼] 가족│김상배 변호사
  • 이천설봉신문
  • 승인 2023.12.26 10: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  족
 

김 상 배법무법인 서울센트럴 대표변호사前 서울고등법원 판사
김 상 배
법무법인 서울센트럴 대표변호사
前 서울고등법원 판사

휴일이라 아내와 함께 집 옆에 있는 양재천을 한 시간 정도 산책하고, 늦은 아침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에는 딸아이가 내려준 커피를 함께 마셨다. 얼마 전 공군에 입대하여 훈련받고 있는 아들도 휴일에는 편하게 쉬고 있을 거라는 얘기도 나누었다.

커피를 마신 후 아내는 강의자료를 만든다면서 도서관에 나가고, 딸아이도 시원한 카페에 가서 독서하겠다면서 집을 나갔다.

갑자기 혼자 외톨이가 되어 무엇을 할까 잠시 고민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나가서 혼자 조용히 책을 읽는 것이 좋겠다 싶어 사무실에 나왔다.

사무실 내 방에는 코로나 때 어머니께서 그리신 꽃 그림이 벽에 걸려있다. 책상 뒤 창문 앞에는 약 8년 전 아내와 함께 제주도에 갔을 때 어느 관광지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책상 컴퓨터 옆에는 딸아이가 전자파를 감소시키고 공기도 정화해 주는 식물이라면서 수년 전에 사다 준 ‘스투키’라는 식물의 화분이 있다. 일을 하는 중에 가끔 물을 주면서 돌보았더니 이제는 잎의 길이가 30센티나 될 정도로 제법 크게 자랐다.

사무실에 아들과 관계된 물건은 없는가 하고 찾아봤더니, 아들이 몇 년 전 어버이날 내 이름의 영문 첫 글자인 K.S.B.를 새겨서 선물한 볼펜이 있다. 바지 뒷주머니에는 아들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내 생일 선물로 사다준 3만 원짜리 지갑이 아직 들어있다. 떨어지면 더 비싸고 좋은 것으로 바꿀까 했더니 낡기만 하고 떨어지질 않는다. 아마도 앞으로 2, 3년은 더 사용해야만 할 것 같다.

아내와 결혼하여 딸과 아들을 낳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족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딸과 아들이 커갈수록 가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상대적으로 아내와 내 비중이 조금씩 작아지는 듯하지만, 그것이 싫거나 기분 나쁘지는 않다.

얼마 전 아내가 나와 결혼해서 가장 잘한 것이 딸과 아들 두 명을 낳은 것이라는 말을 내게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못하지만, 아내는 딸과 아들을 말할 때면 ‘우리 이쁜 딸’, ‘우리 멋진 아들’이란 말을 달고 산다.

내가 좋아했던 안소니 퀸이라는 배우가 출연한 ‘구름 속의 산책’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는 사랑의 상처가 있는 남녀가 우연히 만나서 사랑을 이루게 되는 가족영화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의 할아버지인 안소니 퀸이 손녀사위가 될 남자 주인공인 키아누 리브스에게 하는 조언 중에 “가족이 된다는 것은 새 옷을 입는 것과 같다. 처음 입었을 때는 너무 크거나 작아서 당장 벗어버리고 잘 맞는 다른 옷으로 바꾸고 싶지만, 계속 입다 보면 내 몸에 익숙해지고 친숙해져서 그 옷만을 입게 된다. 가족이란 바로 그런 옷과 같다”라는 멋진 명대사가 나온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을 맡고 브래드 피트가 출연한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고전 영화도 떠오른다. 영화는 로키산맥이 있는 미국 몬태나주의 시골 강가에서 자란 주인공이 이제는 노년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혼자 쓸쓸히 남아, 고향 강가에서 연어 낚시를 하면서 이미 사망한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아내를 회상하는 영화이다.

교회 목사인 주인공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설교에서 가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뭘 해야 하는지 몰라 못 도와주기도 하고, 도와주려던 걸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해야 합니다.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온전히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 가족이라 해서 모든 것이 서로 잘 맞을 수는 없다. 가족이라 해서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랑으로 온전히 감싸줄 수 있고, 감싸주어야 하는 것이 가족이다.

사무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아내와 딸 아들이 함께하는 가족 카톡방이 시끄럽다. 아들이 맡겨놓았던 휴대폰을 휴일이라고 잠시 돌려받아서 아내에게 전화하고 가족카톡방에 메시지를 올려놓자, 아내와 딸아이가 좋아서 서로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가족이란 서로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만 들어도 기분이 좋은 그런 관계이다.
​​​​​​​
나는 오늘도 성당에 가서 그러한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축복의 촛불을 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