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칼럼] ‘금쪽이’만 키우면 모두가 불행해진다│박수진 시인, 동요인
[설봉칼럼] ‘금쪽이’만 키우면 모두가 불행해진다│박수진 시인, 동요인
  • 이천설봉신문
  • 승인 2023.09.1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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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이’만 키우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박  수  진
시인
동요인

지난 여름은 참으로 뜨겁고 잔인했다. 환경 파괴의 업보로 인해 반갑지 않게 신조어가 된 ‘극한 호우’나 ‘극한 폭염’, 이상 진로를 보인 태풍 같은 자연재해도 너무 아프지만 참을 만했다. 

그런 물리적 환경보다는 사람이 저지른 일로 하여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울화를 부추겨 숨을 막히게 했다. 호우 속에 부실한 제방이 무너지고 물이 넘쳐 지하도에서 숱한 사람이 목숨을 잃을 때까지 먼 산 불 보듯 방치한 공무원들, ‘묻지마 칼부림과 폭행’으로 생긴 사회적 불안과 준비성 없는 세계 잼버리 행사 진행으로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고도 책임 떠넘기기에 바쁜 지도자들의 모습이 뜨거운 여름을 더 힘들게 했다. 

그중에서도 여름방학을 앞둔 지난 7월, 서울의 강남 서이초등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2년 차 여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은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듯 여름을 더 뜨겁게 달구었다. 고인의 이름도 사진도 없는 추모 공간에 전국에서 수많은 교사들이 찾아와 오열하며 추모했다. 참사 현장인 서이초등학교 담벼락과 건물에 붙여놓은 포스트잇에 쓰인 편지 내용은 무너진 교육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 다들 당하는 걸 보면서 ‘난 운이 좋아서 안 당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 부당함에 맞서는 사람이 되라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 선생님과 똑같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제가 먼저 소리 내지 못했습니다. ……

젊은 여교사를 보내고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은 매주 토요일 이글대는 광화문과 국회 앞 길 위에 검은 상복을 입고 앉아 이제까지 우리가 보지 못한 절제되고 격조 높은 집회를 열었다. 그것은 집회라기보다는 차라리 참고 참아온 교사들의 울음이고 몸부림이며 생존을 위한 절규였다.

그리고 연이어 폭로된 교권침해 사례들이 공분을 일으켰으며 그동안 악성 민원과 함께 학교나 교육 당국조차 힘없는 교사 개인을 죽음에 이를 만큼 무서운 벼랑 앞으로 어떻게 내몰았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하였다. 교사들의 외침은 뜨거운 8월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여의도 국회 앞으로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교사들의 극단적 선택의 비보가 연이어 들려왔다. 2학기가 시작된 9월 2일 국회 앞 집회에는 20만 교사들이 집결해 ‘아동복지법 즉각 개정’과 ‘악성 민원인 강경대응’ 피켓을 들었다. 교육부가 교권회복을 위한 종합방안을 내놓았지만 미흡하다고 여긴 까닭이다. 또 9월 4일에는 고인의 49재를 맞아 ‘공교육 멈춤의 날’을 선포하고 전국 각지에서 추모와 함께 대규모 집회를 열어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어쩌다 우리 학교와 교육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정치의 부재, 이기적인 부모의 ‘금쪽이’ 만들기를 탓하기에 앞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뼈저리게 반성하고 책임을 느껴야 한다. 인권 보호라는 미명 아래 교권보다 학생 인권이 강조되며 일기 쓰기 지도마저 인권 침해로 규정할 때부터 이미 불행의 싹은 자라고 있었다. 급기야 교육적 나침반인 신상필벌은 커녕 ‘칭찬’마저 차별로 규정해 교사를 처벌할 수 있게 하는 법으로 교사들의 입과 손과 숨통을 틀어막았다. 

교육을 수요 공급자 입장으로 보는 소비자 만능주의도 학교 황폐화의 주범이다. 생활지도는 고사하고 수업 진행마저 어려워져 곳곳에서 교사들이 신음했지만 그동안 누구도 교사들의 고통에 진정으로 응답하지 않았다.

외양간은 소를 잃고라도 고쳐 놓아야 한다. 이제 정부와 국회는 교권과 학습권, 학생 인권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법적인 뒷받침과 함께 악성 민원 대책을 서둘러 내놓기를 바란다.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조항으로 교육 현장을 황폐화시킨 아동복지법 개정과 책임은 없고 권리만 나열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재검토, 일원화된 민원창구 마련과 악성민원인 선제적 대응 등 교권보호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제도화되어야 교사가 살고 교육이 바로 설 수 있다. 

그에 발맞추어 서이초 교사를 죽음으로 내몬 원인 중 하나로 알려진 업무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학교 구성원들의 반성과 개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기피 학년 담임이나 과중한 업무를 신임 교사에게 떠맡기는 것을 당연시하는 관행과 중·고등학교의 경우, 담임을 비롯해 학생지도 같은 힘든 업무를 기간제 교사에게 전담시키는 일이 없는지도 아프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학생의 학업 성취도와 내적 성장은 선생님에 대한 믿음과 존경에 비례한다는 말은 변함없는 진리이다. 교사가 죽고 학교가 무너지면 국가의 미래도 없다. 저마다 ‘금쪽이’만 키우려 하면 우리 모두가 불행해진다. 부모들은 버릇없고 배려심 없는 금쪽이보다는 예의 바르고 선생님을 존경할 줄 아는 반듯한 내 아이를 만들어 학교에 보내야 한다. 

교육공동체인 교사, 학생, 학부모 그리고 우리 사회가 함께 마음을 모아 다시 웃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행복한 밝은 학교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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