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칼럼] 자립행위│정현웅 반석교회 장로
[설봉칼럼] 자립행위│정현웅 반석교회 장로
  • 이천설봉신문
  • 승인 2023.08.1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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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행위

정 현 웅반석교회 장로
정 현 웅
반석교회 장로

자립행위란 홀로 선다는 의미입니다. 한 마디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기 일을 스스로 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자신이 행할 일을 타인의 손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처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별하는 데엔 여러 가지 기준이 있을 것이나 종이의 사용량을 비교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공중화장실의 청소를 통해서도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깨끗하고 후진국일수록 불결하다는 것입니다. 

80년대 초 일본을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새벽 2시경 호텔을 나와보니 가게 앞을 핀셋으로 담배꽁초를 줍는 노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분께 질문하였지요. 이 늦은 시간에 하시는 일이 무엇이냐고. 그의 대답은 ‘내 가게 앞은 내가 청소를 해야지요’ 하면서 핀셋 청소에 이어서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공중화장실은 수년 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나 아직도 불결한 상태입니다. 이는 국내에 거주하는 제3세계 근로자들 때문이라고 핑계하는 사람도 있으나 실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고속도로의 휴게실은 그 어느 곳보다 깨끗해졌다고 하나 아직은 아닙니다. 

2002년 6월은 월드컵 대회가 열릴 때, “대한민국 짝짝짝”하는 젊은이들의 함성, 붉은 악마들의 외침이 강토를 휘저을 때였습니다. 언제나 그 뒷자리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게 마련이었던 시절이었고, 지금은 많이 변하였다고 하나 아직은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출산율의 저하는 이러한 곳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는 아니고 너희들의 책임이라는 의식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아닌가 생각이 미칩니다. 

이것이 오늘날 청년들의 실상입니다. 응당 자신이 행하여야 할 자립행위임에도 부모들이 대신해 주는 과잉보호 속에서 성장한 청년들의 모습인 것이지요. 심지어 학교에서의 청소도 부모들이 감당해 주는 여건에서는 자라나는 청년들에게 자립행위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나무 위에서 낚시하는 행동은 아닐지요. 

자립 없는 행위는 삶에서도 이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선진사회의 구성원들은 쓰레기를 남의 손에 의지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버려야 할 곳에 스스로 버리는 자립인 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마태복음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천국의 입성도 행동을 중요시하는 말씀입니다. 자립행위는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행위가 따르지 않는 말만의 자립은 그 자체가 모순된 것이지요. 

이재철 목사는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청년의 때엔 자기의 내적 가능성의 그릇을 키우는 때다 그 그릇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영적 선도와 실력의 그릇이다. 청년 시절의 확정된 그릇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내적 그릇을 키우기보다 외모에 더 몰입한다는 것은, 자기 일생의 수준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청년의 때에 실력배양에 실패한다면, 이는 평생 빈 깡통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청년 시절에 자립행위를 키우지 않는다면 평생 타인의 손에 자신의 뒷정리를 맡기는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말을 합니다. 이는 어린 시절에 자립심을 키우지 않는다면 그는 평생 자립하지 못하고 타인의 손길을 의지한다는 의미겠지요. 자립행위란 어느 특정 분야에서만 해당하는 말이 아닙니다. 어느 분야에서건 필요한 우리 모두의 필요충분한 덕목일 것입니다.

자립합시다. 자립행위는 부모들이 자녀에게 바라는 희망이기 이전에 이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바라는 소망이기도 합니다. 청년이여! 젊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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