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칼럼] 법에도 사랑은 있다│김상배 변호사
[설봉칼럼] 법에도 사랑은 있다│김상배 변호사
  • 이천설봉신문
  • 승인 2023.07.10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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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상 배법무법인 서울센트럴 대표변호사前 서울고등법원 판사
김 상 배
법무법인 서울센트럴 대표변호사
前 서울고등법원 판사

‘법에도 사랑은 있다’

20여 년 전 지방에 소재한 법원에 근무할 당시 소속 법원 마라톤회에서 플래카드로 만들어 등에 붙이고 달리던 슬로건이다. 

당시 마라톤 열풍이 불어 언론사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주최하는 큰 규모의 마라톤대회가 연간 다양하게 열렸다. 내가 근무하던 법원에서도 1년 동안 5~6개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때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단체들이 소속 단체를 나타내는 슬로건을 플래카드로 만들어 등에 붙이고 달리는 것이 보기 좋아 내가 근무하던 법원에서도 슬로건을 공모하였다. 

당시 채택된 것이 대법원이 추구하는 기본 이념인 ‘자유, 평등, 정의’와 ‘법에도 사랑은 있다’였다. 

법원의 재판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가치가 ‘자유, 평등, 정의’이지만, 한편으로는 판사들이 재판함에 있어서 사람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애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내가 제안하여 채택되었던 것이 ‘법에도 사랑은 있다’였다. 

사람들은 흔히 법원의 재판을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라고 부르며 법과 재판이 재벌들이나 권력자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법과 재판이라는 제도는 ‘없는자 약자’를 ‘가진 자, 강자’의 사적인 강압과 횡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생긴 것이다. 현재도 법과 재판은 ‘가진 자, 강자’로부터 ‘없는 자, 약자’를 보호하는 역할이 가장 기본적인 가치이자 의무이다.

법원이 재벌들이나 권력자들에게 유리하게 판결을 한다는 오해가 큰 데다가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에 따라 판결 결과가 달라지기도 하여 법원 판결에 대한 불신이 커지다 보니, 요즘은 인공지능 판사를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AI)이 더 발전할 경우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큰 직업군으로 판사, 변호사를 분류한 언론기사도 있었다. 

AI가 판사 업무를 대체하면, 변호사는 판사가 아니라 AI 카메라를 향하여 공손한 태도로 변론을 해야 한다. 피고인도 AI 카메라를 향하여 억울함을 호소해야 하며, AI에게 선처를 호소하면서 90도로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일까. 

얼마 전 작년에 맡았던 형사사건 의뢰인의 아버지로부터 감사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당시 의뢰인이 운전 중 일으킨 사건은 자체로만 보면 실형이 선고될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다만 의뢰인은 22살의 대학생으로 전과가 전혀 없었고,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여 조만간 군에 입대하여 하사관으로 장기복무를 하고 싶어 했다. 재판 중 군에 입대하라는 영장이 나와서 혹시 판결선고가 늦어지거나, 실형 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경우에는 군에 입대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재판과정에서 의뢰인의 사정을 확인한 판사님은 오전에 심리를 마쳤다. 통상적으로 법원에서 심리를 마치고 빨라야 3주나 4주 뒤에 판결을 선고함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당일 오후 2시로 판결선고기일을 지정한 후 벌금형으로 선처했다. 담당 검사에게는 의뢰인이 군에 입대할 수 있도록 항소하지 말아달라 부탁도 전했다.

그 결과 의뢰인은 열흘 후 군에 정상적으로 입대했고, 성실하게 군복무에 임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판사가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사건 자체로만 형식적·기계적으로 판결했다면 아마 의뢰인은 입대하지 못하거나, 앞으로의 인생 자체가 크게 달라질 가능성도 있었다.

‘법에도 사랑은 있다’ 

판사를 떠나 변호사를 하고 있는 현재도 나는 이 말을 무척 좋아한다. 여전히 ‘법에도 사랑은 있다’고 믿는다.

법에도 사랑이 있듯 언론에도 사랑이 있다. 그동안 이천시민의 동반자로 묵묵히 든든한 힘이 되어준 이천설봉신문 창간 22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바른 시선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따뜻한 안내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이천설봉신문 1034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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