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땅에서 하늘의 소리를 듣다
역사의 땅에서 하늘의 소리를 듣다
  • 김숙자 기자
  • 승인 2010.05.14 1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화(江華) 선현 유적지 답사기-

유승우(柳勝優) 강남대 석좌교수
전 이천시장

1. 새로운 온고(溫故)를 위하여
   우리나라 오천년 역사에서 가장 시련이 많았던 땅, 서해바다의 파수꾼 강화(江華)를 방문하였다. 오늘 이천 설봉서원(원장 조남철)에서 동양의 고전을 학습하는 연수생 60여명은 춘계문화답사 코스에 동참하는 영광을 가졌다. 아침 8시 반경에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12시가 거의 다 되어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같은 경기도권역이면서도 3시간 이상이나 족히 걸린 듯 하다. 교통 여건으로 볼때 강원도 강릉이나 속초보다 더 멀게 느껴졌다.

   강화도는 섬 전체가 박물관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역사적 유물이 풍부한 땅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청동기 시대 지석묘를 비롯하여 단군신화의 전설이 담긴 참성단(塹星壇), 고려시대의 항몽(抗蒙)유적, 조선조 중기의 병자호란, 구한말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문양호사건을 거쳐 병자수호조약 체결, 최근에는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첨병의 역할까지 수행하며 숨 가쁘게 달려오지 않았는가.

2. 강화대교를 건너며
   김포에서 강화를 잇는 연륙교(連陸橋)의 길이는 694m로 1970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개통되었다고 한다. 나는 1㎞도 안되는 작은 다리, 헤엄을 쳐서도 건널 수 있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조국을 지키는 수문장(守門將)으로서 그 소명(召命)을 다하였다는 사실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대륙을 제패했던 징기스칸의 후예들과 자연성곽의 호(壕)처럼 파 놓은 해자(垓字)같은 가까운 공간을 두고 39년이나 저항한 고려의 무신정권과 삼별초(三別抄)의 영웅들, 병자호란 때 인조(仁祖)의 눈물, 우리는 분명 여기에서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숙제를 풀 수 있을 듯 하다.

   대교를 건너자마자 첫 번째로 들린 곳은 「강화역사관」이다. 이곳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강화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는데 이 역사관은 강화도 여행의 출발지이면서 종착지라 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번영도 그 역사의 침전물에서 승화(昇華)한 것이 아닌가.

3. 어재연(魚在淵) 장군의 한(恨)
  두 번째로 들린 광성보(廣城堡)는 어재연(魚在淵), 재순(在淳)형제가 장렬하게 순직한 곳이다. 병인년(1866)에 프랑스 함대가 개방을 노크한 이래 불과 5년후 신미년에 미국함대가 다시 개방을 요구해 올 때 평화를 사랑하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은 해가 중천에 뜨는 줄도 몰랐다. 홀연히 나타난 미국의 「로저스」제독이 아세아 함대를 이끌고 1230명의 병력으로 침공하였을 때 그들의 대포앞에 맞서는 조선의 병사들은 칼과 창, 돌과 맨주먹으로 최후의 일각(一刻)까지 싸우다 순국하였다. 겁많은 미군들은 이기고도 조선군의 용감한 군인정신에 놀라 퇴각하였다고 한다.

   광성보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용머리 모양으로 돌출된 암반위에 설치된 교두보 「용두돈」이 보인다. 이곳은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전적기념비 전면의 글은 고 박정히 대통령이 썼다고 한다. 이천 출신의 어재연, 재순 형제의 쌍충비(雙忠碑), 순국무명 49명의 비 앞을 숙연한 마음으로 지났다.

4. 산하(山河)는 말이 없는데
   강화의 평화전망대는 남한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남과 북이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다져 나가는 문화 관광의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었다. 맑은 날에는 멀리 송악산이 보이고 요즈음 남북간의 논란이 되고 있는 개성공단까지는 약 15㎞에 불과하다고 한다. 예성강과 임진강, 한강의 3대강이 남북의 수많은 사연을 모아서 서해로 흐른다. 우리는 바다의 포용과 지혜를 배워야 한다. 바다 입장에서 보면 남북의 갈등이 저자거리 아낙네들의 다툼정도도 안될 것이다.

   지호지간(指呼之間)의 거리에서 긴 세월 밤낮으로 눈을 흘기며 긴장의 끈을 풀지 않고 있으니 이 무슨 저주의 운명인가. 한쪽은 자유와 빵이 보장되는 땅, 또 한쪽은 억압과 배고픔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이는 누구의 죄(罪)인가. 일반 백성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 모든 책임은 지도자를 잘 만나고 못 만남의 차이가 아니고 무엇이랴. 언젠가는 이념과 체제를 부수는 초인(超人)이 나타날 것이다. 그날을 기다리자.

5. 結語 : 하늘의 뜻은 무엇인가.
   강화(江華)는 우리 오천년 역사의 축소판이다. 꿋꿋하게 지켜온 그 모습은 흔들리지 않는 대장부의 기상과도 같다. 비바람속에서도 우뚝선 느티나무이기도 하다. 5천년 은자(隱者)의 나라가 긴 잠에서 깨어나 개방(開放)의 문을 연 곳이다. 치욕적인 불평등조약이지만 강화도 병자수호조약 같은 것이 없이 지금까지 문을 다고 살았다면 오늘의 이 번영이 있었을까. 아니다. 이 조그만 지혜의 땅 한국을 세계반열에 동참시킨 것은 바로 강화의 안목(眼目)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10.  4.  7 강화답사를 마치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