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背景
배경(背景
  • 김숙자 기자
  • 승인 2010.03.0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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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에르토리코의 국립 미술관에는 푸른 수의를 입은 노인이 젊은 여자의 젖을 빠는 ‘노인과 여인’이라는 그림 한 장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방문객들은 노인과 젊은 여자의 부자연스러운 행각을 그린 작품에 불쾌한 감정을 표출할 뿐만 아니라 딸 같은 여자와 놀아나는 듯한 노인의 부도덕한 모습의 그림을 바라보며 처음에는 누구라도 통렬하게 비난을 한다고 합니다.  이런 그림이 어떻게 국립미술관의 벽면을 장식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구석진 곳이 아닌 정면 입구에 하며,  누구라도 의아해 한답니다. 푸른 수의를 입은 주책스런 노인과 이성을 잃은 듯 한 젊은 여성은 가장 타락한 인간의 한 모습으로 마음속에 비쳐지는 것이지요.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지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정말 외진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포르노인가. 그러나 그림의 뒷이야기를 듣고 나면 누구라도 긍정하며 수긍하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림속의 노인은 분명 아버지이고 젊은 여성은 그의 딸이라고 합니다.  노인은 푸에르토리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싸운 위대한 투사였습니다. 그러나 독재정권은 노인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고 가장 잔인한 형벌을 내렸던 것이었습니다.  “음식물 투입금지” 노인은 감옥에서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딸은 해산한지 며칠 지나지 않은 무거운 몸으로 감옥을 찾게 됩니다.  아버지의 임종을 보기 위해서 였지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본 딸의 눈에 핏발이 섰습니다.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아버지 앞에서 무엇이 부끄러운가. 여인은 아버지를 위해 가슴을 풀었다고 하는 그러한 이야기입니다.  ‘노인과 여인’이라는 그림을 통하여 부녀간의 사랑, 헌신, 그리고 애국심이 담긴 숭고한 작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푸에르토리코 국민들은 이 그림을 민족혼이 담긴 ‘최고의 예술품’이라고 자랑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림 속에 깃든 뒤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처음에는 비난을 하게 되지만 안내에 따라 내용을 자세히 듣고 나면 진솔하게 그림을 다시금 감상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인 중에 중도 실명으로 지금은 거의 명암마저도 식별이 어려운 분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부인이 곁에 꼭 붙어 있으면서 함께 걸어 다니고는 하는 것이었지요.  우리들은 뒤에서 조롱의 말을 거침없이 숙덕거렸습니다. 젊은이들이 좀 심하군, 자기 들이 무엇이나 되는 양, 부부의 금실을 보여주기 위하여 별 짓을 다한다고 하면서,  그러나 최근에서야 그는 각막이 점점 더 회복될 수 없는 상태로 잘못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들 부부는 남들에게 공개적으로는 밝히지 않고 남편의 거동을 도와주기 위하여 가장 가까이에서 손을 잡기도 하고 팔짱을 끼면서 걸음을 걸었던 것입니다. 중도 실명의 위기라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미안하던지요. 비난하던 내 모습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모든 일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뒷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배경이 있다는 것이지요.
국회의 여 · 야 뿐 만이 아니고 정치인들은 정권을 잡기 위한 방편의 일환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말을 거침없이 토해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배경을 잘 알지 못하는 범인들은 그런가 보다 하는 경우가 많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사 모두에는 배경이 있음을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면에 펼쳐지는 실상을 그대로만 바라보지 말고 그 배후에 있는 배경까지 살필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한 것이지요. 우리 서민 모두도 겉모양만 바라보고 일희일비 하지 말고 배경을 살필 줄 아는, 실상의 근원을 밝히는 지혜의 삶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품게 됩니다.  ‘노인과 여인’이라는 그림에만 배경이 있지 않겠지요. 세상사 모두에는 그 나름의 배경이 있습니다.  공동묘지에도 묘지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2010. 2. 1>

안양대학교   교육학박사   정  현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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