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로마로 통하고 세상은 나로 통한다
길은 로마로 통하고 세상은 나로 통한다
  • 김숙자 기자
  • 승인 2009.12.03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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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환 <(사)국민독서문화진흥회 경기이천지부장>

  얼마 전에 유익한 강의를 들었다. 강사는 중국의 만리장성과 로마의 도로 사진을 보여주며, 천 년의 로마제국 건설이 가능했던 것은 길을 만든 덕분이고, 진제국이 불과 십오 년만에 붕괴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기만의 성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모두 글로벌 시대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 오랫동안 여운을 주는 명강의 중에 하나였다.
  실제로 로마는 주변국을 정복할 때마다 튼튼한 길을 만들었다. 도로를 건설함으로써 정복한 국가와 소통을 원활하게 해서 쉽게 피정복자들을 로마제국에 융화시킬 수 있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제국을 세계의 중심지로 만든 힘은 바로 길에 있었다. 이에 비해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하면서 이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 자기만의 성을 쌓고 자기만의 제국을 꾸리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진제국은 진시황이 죽은 지 4년 만에 붕괴되었다. 진시황이 그렇게 공을 들여 쌓은 만리장성은 제국의 붕괴를 막는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성공하고 싶으면 성을 쌓지 말고 길을 뚫어라.”
  사실 세상의 모든 길은 길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길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물이 끊어놓은 길은 배로 연결하고, 산과 바다가 끊어 놓은 길은 비행기로 연결하고, 우주공간이 끊어 놓은 길은 우주선으로 연결하면서, 인류는 끊임없이 길을 모르면 찾아왔고, 아무리 찾아도 없는 길이면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 왔다. 길은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찾으면서 없는 길은 만들어 온 이에게는 발전과 번영을 보장해 주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성은 단절을 만든다. 특히 인위적으로 쌓은 성은 그 단절의 강도가 강하다. 단절은 안팎의 대립을 고착화 시켜서 갈등과 고통만 안겨줄 뿐이다. 글로벌 시대인 요즘에는 고전적인 성은 거의 유물로만 남아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돌과 벽돌로 쌓은 성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으로 쌓아 놓은 성이다. 특히 예전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훨씬 빠른 시간으로 교류되고 있는 시기에, 스스로 쌓아 놓은 마음의 벽 하나 때문에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된다. 그들은 아무리 주변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도 잡을 줄 모른다. 마음의 성이 만들어낸 단절의 고통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게 좋은 줄은 알죠. 하지만 뜻대로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나요?”
  “말은 쉽죠,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요즘 들어 성인들을 대상으로 독서논술지도 강의를 하면서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내 아이가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잘 쓰기를 바라면서 정작 스스로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려고 시도를 하지 않는다. 스스로 글쓰기가 어렵다는 마음의 성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독서감상문 쓰는 요령을 배웠으면 스스로 먼저 그대로 써볼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운 그대로 아이에게 독서감상문 쓰는 요령을 가르쳐 주려고 한다. 내가 먼저 직접 써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직접 쓰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물론 그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생전 겪어 보지 못한 일을 만나거나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할 때 쉽게 용기를 내기가 어렵다. 특히 어른들은 그 동안 살아오면서 자기 나름대로 자신에 대해서 잘 안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결국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을 위로 받으려고  “좋은 줄이야 알죠, 하지만....”, “말이야 쉽죠. 하지만....”이라는 말로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자기 변명을 하는 것이다. 그나마 이런 말을 직접 밖으로 꺼내는 사람은 희망이라도 보인다. 하지만 이런 말도 속 시원히 내뱉지 못하고 애를 태우며 자기만의 성을 무너뜨릴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을 보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이런 사람에게 자칫 뭔가 도움이라도 주려고 접근했다가 오히려 그가 쌓아 놓은 성에 부딪쳐 미움이나 원망을 살 확률이 더욱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들을 어쩌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나를 더욱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 왔던가? 나는 과연 어떤 길을 만들어 왔던가? 그 동안 괜히 나만의 성을 쌓아 온 것은 아닌가? 시간 날 때마다 스스로 반성하면서 우선 나부터라도 나만의 성을 부수고, 나만의 길을 만들기 위해서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뇌곤 한다.
  “그래, 해보는 거야. 모르는 길이면 찾아보고, 찾아도 없는 길이면 만들려고 시도라도 해 봐야지.”
  “말이라도 쉬운 것은 누군가는 하고 있는 일이 아닐까? 그래, 우선 해 놓고 보자.”
  “길은 로마로 통하고 세상은 나로 통한다.”
  말이라도 이렇게 해놓고 보면 그때마다 괜히 내게도 없는 용기가 생기는 듯하다. 세상의 무슨 일이라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곤 한다. 진시황 부럽지 않은 세상의 주인이 된 것만 같기도 할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요즘은 사실 어른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면서 누구보다 먼저 나 스스로 부족한 것을 느껴가며 많은 것을 배워가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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