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시의향기(223)-박남수'종소리'
[연재]시의향기(223)-박남수'종소리'
  • 김숙자 전무이사
  • 승인 2006.05.2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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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떠난다. 청동(靑銅)의 표면에서
일제히 날아가는 진폭(振幅)의 새가 되어
광막한 하나의 울음이 되어
하나의 소리가 되어.

인종(忍從)은 끝이 났는가.
청동의 벽에
‘역사’를 가두어 놓은
칠흑의 감방에서.

나는 바람을 타고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
꽃에서는 웃음이 되고
천상에서는 악기가 된다.

먹구름이 깔리면
하늘의 꼭지에서 터지는
뇌성(雷聲)이 되어
가루 가루 가루의 음향이 된다.


박남수(1918~1994)‘종소리’(<신의 쓰레기>,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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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의 표상(表象)으로 인식되기 쉬운 ‘종’을 현대적 지성과 융합된 이미지로 형상화하였다. 이 시는 인간 존재의 가치를 탐구한 시로, 오랜 인종(忍從) 끝에 역사의 질곡을 박차고 나가는 시인의 자유를 향한 비상(飛翔)과 신념을 노래하고 있다. 소리가 청동의 벽에 갇혀 있는 동안, 즉 종이 울리지 않는 동안은 칠흑의 감옥과도 같다고 화자는 말한다. 오랜 인종(忍從) 끝에 ‘나’는 ‘진폭의 새’가 되고, ‘울음’이 되고, ‘소리’가 되어 청동의 표면을 떠난다. 그 종소리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 들의 ‘푸름’을 되찾아 주고, 꽃의 ‘웃음’을 되찾아 주고, 천상의 ‘악기’를 울리게 하여 역사의 질곡에 갇힌 세상을 자유롭고 평화롭게 한다. 그리하여 종소리는 ‘청동의 표면’에서 떠난 한 마리 ‘진폭의 새가’ 된 다음, 마침내 ‘광막한 울음’을 우는 거대한 ‘하나의 소리’가 되어 인간의 삶과 꿈, 그리고 역사를 잉태하고 무한한 자유의 공간으로 퍼져 나는 것이다. ‘자유’는 절제되었을 때에 아름다운 것이다. 자유를 향한 그 뜨거운 설렘은 같겠지만, ‘80년대 민주의 가치를 꿈꾸던 자유와, 현재의 가치관의 차이에 다른 혼란으로 인한 투쟁의 자유는 엄밀히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 신배섭■시인
                김숙자 기자 icksj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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