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한국을 만나다
베트남 한국을 만나다
  • 이천설봉신문
  • 승인 2013.05.0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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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인 통·번역사의 한국 적응 비결

 
“ 한국어 배우고, 가정을 소중히 가꾸라”

결혼이주자, 외국이주노동자 등 외국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한국사회는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이 증가하고 최근 다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천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따르면 현재 1,028명의 결혼 이주자와 6,110명의 이주노동자가 이천에 거주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늘어날 추세이다. 본지는 우리 삶 속에 들어온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또한 그들의 눈으로 비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자는 취지로 다문화 칼럼 연재하고자 한다. 인터뷰의 첫 인물로 현재 이천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이하 다문화센터)에 근무하는 남지인(Nam Chi In) 통·번역지원사를 만났다.

 

△출신지와 한국에 온 시기는?

베트남 남부의 중심지인 호치민(Ho Chi Minh)시의 근교에서 자라서 성장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이라서 2년제 간호학원을 졸업하고 간호사가 되었다. 주위의 소개로 현재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인연을 맺게 되어 2005년 2월 한국에 왔다. 베트남은 겨울이 없는 따뜻한 날씨라서, 한국의 겨울은 너무 추웠다. 김치, 된장찌개 등 맵고 짠 한국음식도 낯설었고, 베트남에서 먹던 생선류나 과일류도 한국에서는 찾아 볼 수 없어서, 고생을 했다.

 

△한국에서 적응하면서 어려웠던 점과 극복과정은?

낯선 기후와 음식 이외에 가정 어려웠던 점은 언어였다. 당시 한국어를 전혀 못했기 때문에 주위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남편이 집에 없으면 전화나 방문객을 맞이하는 일을 하는 것도 두려웠다. 한국에 온지 두 달 만에 임신을 하게 되어서, 이천 양정분 산부인과를 다녔는데, 마침 산부인과 원장님께서 다문화가정을 위한 한국어 수업 등 문화원을 꾸리고 계셔서 처음으로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다. 아이를 출산할 때까지 꾸준히 한국어를 배웠고, 그 후 남천로터리클럽, 다사랑문화센터에서 한국어와 요리, 노래, 문화탐방 등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한국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2008년에 둘째 아이를 출산하며 잠시 쉬기도 했지만, 집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공부했고 일반적인 한국어 소통이 가능해진 후에는 베트남어 번역·통역 자원봉사도 시작했다. 2012년에는 한국어 중급시험에 합격했다. 2009년에는 운전면허도 취득했는데, 당시에는 필기시험을 한국어로 준비하느라(2012년부터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베트남어로 응시할 수 있음) 매우 힘들었는데, 필기, 실기, 주행까지 한 번에 통과했다. 옆에서 많이 도와준 남편과 가족들이 고맙다.

 

△언어 뿐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에서 어려웠던 점은?

지금은 다문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한국 생활 초창기에는 버스 안에서 베트남어로 통화를 하거나 이야기를 하면 주위의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아서 외부에서 베트남어를 사용하기가 부끄러웠다.

따뜻한 기후 탓인지 베트남에서는 의복이 간단하고, 집안에서 입는 옷과 외출복의 차이가 없고, 슬리퍼를 즐겨신는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계절에 따라, 장소에 따라 옷을 구분하고 손님이 오면 옷을 갈아입을 정도로 의복에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우며 어려웠던 점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다른 한국학부모들은 자녀의 교육과 관련하여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친하게 지내는데,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물론 언어나 문화의 차이 등 장벽이 있지만,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아이들을 함께 키운다는 열린 마음으로 대해 주었으면 한다.

한국 생활 초기에는 얼른 한국어를 배우고, 빨리 한국인 같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고 나의 경험과 능력을 통해 국민으로 한 몫을 담당하는 멋진 베트남출신이고 싶다.

 

△다문화센터에서 근무하게 된 계기와 업무 내용은?

아이들이 자라고, 자유시간이 늘어나면서, 집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한 공장에서 포장을 하는 일을 했는데, 성실하게 일을 잘 하자 정식직원으로 채용되어 2년간 근무했다. 직장도 가깝고, 업무도 품질검사부로 변경되어 어렵지 않았다.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이 있었지만, 업무의 특성상 사람들과의 교류가 적고 새로운 경험과 배움이 없다는 점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남편과 주위사람들의 만류에도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도서관과 다문화센터의 언어발달수업을 신청했다. 마침 다문화센터 통·번역사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고, 그간 자원봉사를 해 오던 다사랑문화센터 원장님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다문화센터의 통·번역사로 취직하게 되었다.

다문화센터의 업무는 주로 이천지역 베트남어의 통·번역 업무와 결혼이민자들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해준다. 또한 결혼이민자들의 상담도 맡고 있으며, 이천의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이주민들의 자족모임과 베트남 전통춤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늘 바쁘고 업무가 많지만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무엇보다 나의 경험을 다른사람에게 나누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이주자를 비롯한 한국에서 살아가는 외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말을 빨리 배우라는 것이다. 생활의 여러 가지 면에서 고향과는 큰 차이가 있겠지만, 말을 배우고 조금씩 이해를 하다보면 한국 생활이 조금씩 편해진다. 과거와 달리 현재에는 다문화센터 등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다. 한국어를 통해서 한국문화를 이해해가는 일이 한국생활의 첫 걸음이다.

또한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말을 배우고, 직장을 얻어 돈을 벌 수 있다고 해도 가정이 튼튼해야 한다. 상담을 하다보면, 일을 한다고 남편과 아이들을 방치해서 가정이 파괴되는 일들을 많이 목격한다. 베트남에서건 한국에서건 혹은 다른 어디에서건 가정을 지키고, 가족들과 즐겁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호에는 남지인(Nam Chi In) 통·번역지원사와 함께 베트남의 언어, 사회, 문화, 생활에 대한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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