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시의향기(218)-황금찬'보릿고개'
[연재]시의향기(218)-황금찬'보릿고개'
  • 설봉산
  • 승인 2006.04.10 0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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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 밑에서
아이가 울고 있다.
아이가 흘리는 눈물 속에
할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할아버지가 울고 있다.
아버지의 눈물, 외할머니의 흐느낌,
어머니가 울고 있다.
내가 울고 있다.
소년은 죽은 동생의 마지막
눈물을 생각한다.

에베레스트는 아시아의 산이다.
몽블랑은 유럽,
와스카란은 아메리카의 것,
아프리카엔 킬리만자로가 있다.

이 산들은 거리가 멀다.
우리는 누구도 뼈를 묻지 않았다.
그런데 코리아의 보릿고개는 높다.
한없이 높아서 많은 사람이 울며 갔다.
--굶으며 넘었다.
얼마나한 사람은 죽어서 못 넘었다.
코리아의 보릿고개,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
소년은 풀밭에 누웠다.
하늘은 한 알의 보리알,
지금 내 앞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황금찬(1918~ )‘보릿고개’(<현장>,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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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찬 시인의 보편적인 삶에 대한 인식과 정감이 집약된 시이다. 화자는 뼈저리게 가난했던 지난날의 삶이, 개인의 시련이자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삶의 애환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보릿고개”는 지난날 우리 민족이 운명적으로 넘어야만 했던 수난의 계절이며, 생사를 가름하는 절박한 가난의 시절을 의미한다.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굶주림, 그 가난은 대다수의 국민이 겪어야 했던 수난이자 눈물겨운 삶의 고개였다. 지난달 이천시 대월면에 있는 농산물유통공사 비축창고 앞에서 ‘미국 쌀 이천반입 반대 궐기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5.31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분들도 참석하여 혈서를 썼다고도 한다. 그만큼 지금 우리 농촌의 현실이 절박하다는 것이다. 위정자(爲政者)들의 혜안(慧眼)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농민들이 피땀 흘려 평생을 지켜온 농촌의 앞날이 그저 염려스러울 뿐이다. / 신배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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