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초등학교 100년 역사 기린다
이천초등학교 100년 역사 기린다
  • 박상미
  • 승인 2011.04.2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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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지역 교육의 산실, 이천의 역사와 함께해온 이천초등학교
이천초등학교(교장 윤석모)가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지역교육의 산실로 많은 인재들을 길러낸 이천초등학교는 오는 30일 학교 운동장에서 많은 동문들과 재학생, 교직원, 학부모, 지역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100주년 기념행사를 열어 자축할 예정이다.
이천초등학교의 100주년 생일을 맞이해 개교 100년의 의미와 교육현장의 역사를 펼쳐본다.

▶ 이천초등학교의 발자취
미국 감리교 여선교부에서 1903년 이천 소녀들을 위해 ‘매일학교’를 설립했고 이듬해 이천읍 소년들을 위한 ‘특신학교’를 세웠다. 특신학교는 지역인사들의 손에 운영되면서 교회에서 벗어나 독립학교가 돼 이름을 지성학교로 개명했으며 1911년 5월 17일 근대 초등 교육기관인 ‘사립이천보통학교’로 창립 개교했다. 개교 9개월 만인 1912년 2월 15일 국가로부터 정식 교육기관으로 인정받은 공립학교로 편입·인가를 받아 이로써 이천초등학교는 현존하는 최초의 공교육기관의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이천초등학교는 1914년 3월, 4명의 졸업생이 나온 이래 2010년 2월까지 98회 졸업생 2만 49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해오고 있다.

▶ 이천초등학교의 역사
개교 이후 학교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는 전혀 없다. 제 17회 졸업 앨범에 수록된 당시의 교사 전경은 매우 웅장한데 이는 6.25전쟁 중에 불타기 전까지 남한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개교 이후 꾸준히 신·증축을 거듭하며 웅장함을 유지하던 학교는 한국전쟁 발발과 중공군 개입으로 1950년 11월과 1951년 6월 두 차례의 폭격을 받아 후면 교사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전소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전쟁 발발과 동시에 1차 파손되었던 학교 건물이 중공군의 전쟁 개입과 함께 이루어진 1.4후퇴로 인해 전부 소실됐다. 이와 함께 그 동안 보관해 오던 학교생활기록부 및 졸업 대장 등 개교 이후 학교의 중요한 역사적 자료들이 모두 없어졌다. 전쟁 중 교실이 없어 망현산 신사터나 각 부락의 공회당 등을 임시 교실로 활용했는데 율현리, 모전리, 마장리 등에 분실을 설치했다. 모전리에 설치되었던 이천초등학교 분실은 이후 도지초등학교가 되는 등 각각 별도의 학교로 독립하여 개교하게 된다.
1952년 10월 11일에는 UN 원조 물자로 목조 5교실을 건축하였고 교실마다 중간 벽을 설치해 전교생을 실내로 수용하게 됐으며 이 건물은 1954년 단층으로 완공, 이천초등학교 건물의 원형이 된다. 1967년 5월에는 이 교사의 서편 교실 위에 2층이 증축되었으며 1969년에는 동편 교실 위에도 2층을 올림으로써 많은 지역주민의 1970년대와 80년대의 기억 속에 있는 이천초등학교 건물이 제 모습을 갖췄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건물은 1983년에 처음 짓기 시작해 1994년에 완전히 끝나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 지역 교육체계의 중심, 이천초등학교
일제 강점기 내내 중등교육기관이 전무한 상태에서 이천 지역에 최초로 설립돼 길고 어려웠던 시간 내내 공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이천지역민의 교육의 모태가 된 곳이 바로 이천공립보통학교다. 물론 이 기간 내 일제가 강점한 상태에서 교육의 목표는 식민지 지배에 필요한 인적 자원을 재생산하는데 있었지만 이천공립보통학교가 이천지역 교육체계의 중심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근대로 들어서면서 학교는 지역사회의 매우 중요한 기관으로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게 된다. 지역의 중요한 체육행사는 대부분 이천보통학교를 중심으로 개최됐으며 입학식, 졸업식, 소풍 등의 학교 행사는 학부모와 가족이 참여하는 대중행사로 치러졌다. 자연스럽게 학교는 지역민 일상생활의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잡게 됐으며 이천공립보통학교 졸업식에는 이천군수, 이천청년회장 등이 참석해 지역의 중요인사들과 지역민들이 대면하는 자리로 학교가 지역사회의 중요한 영역이 됐다.
체육행사는 이후 새로 설립된 학교별 대항으로 치루기도 했는데 자신의 소속된 학교와 다른 학교를 구분함으로써 스스로의 위치와 정체성을 확인하게 만들어 사회질서에 걸맞은 자아형성을 가능하게 했으며 학교친구는 이제 학생들의 중심적 인간관계로 자리를 잡으며 신분이나 성씨보다 오히려 동창이라는 관계가 더욱 중요해지게 됐다.
1920년대 초반 이천공립보통학교에는 야학을 설치하고 50여명을 가르쳤는데 이런 야학이 공립학교의 부설교육과정으로 채택됨으로써 지역민의 교화와 일상생활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었다.
해방 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학령기 아동을 미처 수용하지 못해 1955년 이천남초등학교를 분리시켰고 1990년 설봉초등학교를 분리함으로써 명실공히 이천 교육의 요람으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해 냈다. 이천 시내 뿐 아니라 인접한 신둔, 백사, 마장, 부발의 모든 초등학교는 모두 그 뿌리를 이천초등학교에 두고 있으니 이천초등학교는 이천 교육의 종갓집이라 할 수 있다.

▶ 역사와 함께 시대적 인재 양성
이천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온 이천초등학교는 사회곳곳에서 시대적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천초등학교 출신으로 활발한 독립운동을 해온 이수흥 열사와 3.1운동 당시 학생 신분으로 4월 2일 이천 장날을 기해 이천읍 만세 운동을 주도한 강문형(16세), 최종석(16세), 서석운(14세) 등이 있다. 이외에도 ‘불온 언동에 관한 사건’으로 이천제1국민학교 고등과 1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 이인수가 ‘조선이 독립된다(朝鮮獨立ナル)’는 글귀를 적어 소지하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같은 학급의 일본 학생 히카와 하쯔꼬(당 14세)에게 알려지게 돼 이천경찰서로부터 조사받고 여주 지청을 거쳐 경기지방법원 검사에게까지 보고된 사건이 있다. 그러나 불온한 언동은 배후가 없으며 이인수가 ‘내심 민족적 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14세 미만이기 때문에 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결론 지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외에도 이천공립보통학교 화장실에 태극기와 함께 조선독립 낙서가 그려져 조선총독부에까지 보고된 사건 등이 있어 이천초등학교 재학생 및 졸업생이 독립운동에 활발히 참여했던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반증할 수 있다. 향후 이천초등학교 출신 학생들의 독립운동과 사회활동 궤적과 성과는 앞으로도 꾸준히 발굴되어야 할 과제이며  앞으로 역사 속에 자랑이될 인재들을 꾸준히 양성해오고 있다.

▶ 새로운 100년을 위한 재도약
개교 100주년을 목전에 둔 지난 8일 학교 교명을 새긴 표석이 세워졌다. 표석의 석질은 변성 퇴적암으로 중량은 18톤에 이르고 이를 영원히 떠받칠 좌대석은 13톤 무게의 화강암으로 총 31톤의 웅장한 조형물이다. 또한 개교 100주년이 되는 2011년도부터 교표가 새롭게 바뀌었다. 이전의 교표가 만들어진 시기는 정확치 않으나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제 30회 졸업 앨범(1943년)에 수록된 것이다. 옛 교표는 일장기, 일왕의 사진과 함께 게시하기 위해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이며 학생들이 그리기도 어렵다는 의견에 따라 개교 100주년에 즈음하여 공모를 통해 이천 최초의 공립학교로서의 상징성과 새로운 도약을 위한 미래지향적인 학교를 부각시키는 한편, 시대에 부합하는 친근감 있고 작도가 쉬운 이미지로 교체했다. 교표와 함께 교목도 개교 100주년 되는 해를 맞아 소나무로 바뀌었다. 기존의 교목은 은행나무였는데 이는 오염에 강한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다산을 상장하는 수종으로 산업사회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의견에 따라 절개와 진리를 상징하며 예로부터 동량의 재목으로 쓰였고 나무로서는 유일하게 민족문화의 100대 상징물인 소나무로 바꾸어 재도약하는 새로운 100년을 기리고자 한다.                                    김숙자 발행인 / 손은지 기자



박인오 총동문회장 미니인터뷰

▶ 이천초등학교 총동문회의 역사는
이천초등학교 총동문회가 창립된 것은 개교 이후 87년만인 1998년 11월 21일입니다. 그동안 기수별 동창회는 개별적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총동문회가 조직돼 있지 않아 이천초등학교 동문들이 뜻을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7년 11월 12일 49회 본교 졸업생이자 현재 이천농협 조합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이태용 씨를 찾아가 총동문회장직을 요청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천초등학교 총동문회의 재정비는 활기를 띄기 시작했고 ‘참여하고 단합하는 이천초등학교 동문’이라는 슬로건 아래 2008년 제1회 이천초등학교 총동문회 체육대회를 개최하게 됐습니다.
100년의 학교 역사로 보자면 총동문회의 역사는 짧기만 합니다. 그러나 동문의 단합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향후 학교와 지역 교육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총동문회의 사업을 찾아 수행해나가겠습니다.
▶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 상황은?
제 1회 총동문회 체육대회를 계기로 100주년 기념사업의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2010년 1월 제 5대 이천초등학교 총동문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의 방향을 제시하고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을 적극 추진할 뜻을 내비쳐‘100주년기념시업추진위원회’를 총동문회 임원진 조직과 동시에 바로 출범시켰습니다.  
이천초등학교 총동문회는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에 있어 물질적인 기념물의 조성보다는 후배들에게 미래 지향적 비전을 갖도록 도와주고자 하는 것에 의견을 모아 학교 역사물의 수집, 전시 공간 마련과 함께 동문 선배들을 초청하여 정기적으로 후배들을 위한 강연 자리를 제공할 예정이며 일제 강점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교육과정 변천과 이에 따른 이천 지역민의 삶을 조망한 ‘이천초등학교 100년사’ 를 편찬했습니다. 총 58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이천초등학교 100년사’는 100년의 학교 역사 뿐 아니라 지역 교육의 역사를  정리한 것으로  이천초등학교 동문들의 뜻을 펼치는데 중심이 되는 사업입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우선은 오는 30일에 진행될 이천초등학교 백년사 발간기념식과 5월 15일 개교 100주년 기념식에 전력 투구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저희 총동문회에서는 학교 역사관의 조성과 동문들의 학교 교육 참여를 장단기 과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학교 역사관은 조성은 학교 100년사 편찬 과정에서 수집되고 정리된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보관하면서 교육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입니다. 최근 저출산의 여파로 취학 아동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남아도는 교실을 역사관 조성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대두되면서 동문회에서 이에 대한 추진이 활기를 띄고 있으나, 재정적으로 많은 부담이 가는 사업이기 때문에 이천 지역의 교육 역사를 지역주민과 함께 공유하고 보전한다는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나 지역주민의 각별한 관심과 후원이 절실합니다.
또한 동문으로 구성된 교육 지원단을 확보해 주기적인 재학생 후배를 대상으로 한 강의와 교육 봉사 활동을 펼칠 예정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예비 동문인 재학생들에게 애교심과 애향의식을 심어줌으로써 향후 모교의 교육 발전을 위해 순환 투자를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할 계획이며 이와 함께 장학 부조 사업을 보다 확대하는 방안 등 향후 동문회 발전을 위한 과제가 속속 발굴되고 있어 단순히 졸업생 친목 차원에 머무르는 동문회를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을 지속히 실행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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