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이후의 인간과 문명-영화의 기술력, 스토리, 메시지로 관찰하기
‘아바타’ 이후의 인간과 문명-영화의 기술력, 스토리, 메시지로 관찰하기
  • 임정후 기자
  • 승인 2010.12.30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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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특집-영화로 읽는 인간의 미래


올해 초에 본 영화 한 편이 연말이 다 되도록 아직 그 진한 여운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내 마음속 깊이 남아 있는 건, 웬만큼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흔치 않는 일이다. 일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미 ‘영화의 혁명’이라 일컬어질 만큼 평단과 일반 관객들의 뜨거운 호평과 화제를 모았던 영화, <아바타>.
<아바타>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12년 만에 선보인 역작이다. <터미네이터> <에이리언 2>는 물론 <타이타닉>으로 전세계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 그는 눈부신 영상 기술에 탄탄한 스토리로 상상만이 가능할 것이라 믿었던 것들을 눈앞에 펼쳐 보이며 평단 및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호평을 받아 왔다.
무려 14년간의 구상, 4년간 제작, <타이타닉> 이후 12년 만에 선보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야심작 <아바타>는 행성 판도라와 지구의 피할 수 없는 전쟁 속에서 새로운 생명체 ‘아바타’로 거듭난 지구의 한 남자 '제이크(샘 워딩튼)'와 외계 행성 나비(Na'vi) 족의 '네이티리(조 샐다나)'가 선택해야 할 단 하나의 운명을 그리고 있다. 해병 출신으로 하반신 불구의 몸에서 자신의 의식으로 ‘아바타’를 원격 조종하며 새로운 세계를 자유롭게 누비는 ‘제이크’와 판도라의 토착민인 나비(Na’vi) ‘네이티리’의 사랑, 판도라의 자원을 채굴하려는 인간과 이를 지키려는 나비(Na’vi)와의 갈등,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전쟁까지. <아바타>는 전 우주를 넘나드는 대서사시적 스토리와 ‘이모션 캡처’ 등 눈부신 첨단 기술력이 탄생시킨 매혹적인 영상미로 지금껏 접한 적 없는 새로운 세계로 관객들을 인도했었다.
이 <아바타>를 본 지 1년 가까이 흐른 오늘 아직도 깊이 남아 있는 그 진한 여운의 정체를 되새김질해보고자 한다. <아바타> 이전엔 결코 볼 수 없었던 영화의 새로운 혁명적 모색들 - 이를 영화의 기술력, 스토리, 메시지,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자.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것은 단순한 영화의 상징과 의미를 넘어서 인류가 잃어버렸던 인간과 자연의 존재의 이유와 이상까지 보여주었던 영화 이상의 것이었다.  

기술력 - 이모션 캡쳐와 가상 카메라를 이용한 디지털 영화 혁명
원래 ‘아바타’는 분신(分身)·화신(化身)을 뜻하는 말로, 사이버공간에서 사용자의 역할을 대신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이다. 고대 인도에선 땅으로 내려온 신의 화신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인터넷시대가 열리면서 3차원이나 가상현실게임 또는 웹에서의 채팅 등에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그래픽 아이콘을 가리킨다.
영화 <아바타>에서는 이 ‘아바타’를 영상으로 보여주기 위해 첨단 기술력이 총동원되고 있다. 그간 관객들을 매료시켰던 수많은 영화들은 ‘모션 캡처’라는 방식을 사용해 CG를 표현해 왔다. 모션 캡처는 배우들의 몸에 센서를 부착해 그들의 움직임을 읽어낸 뒤, 후반 작업을 통해 CG를 완성시키는 방식이다. 신체 여러 부분에 센서를 부착한 뒤에 각 센서의 위치값을 통해 가상캐릭터가 같은 동작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이다. <아바타>에서는 인간이 탑승을 하는 전투용 대형 로봇이 등장하는데, 이때 탑승자인 인간은 로봇을 작동시키는 구동 칩(Chip)과 같은 역할을 한다. 즉, 탑승자가 주먹을 휘두르면 타고 있는 로봇도 똑같은 동작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식으로 움직임이 그대로 전달되는 일종의 모션 캡처 방식의 로봇인 셈이다.  
하지만 모션 캡쳐 방식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전신을 CG 처리해야 할 경우, 배우들의 얼굴에 부착된 센서로 인해 손으로 얼굴을 만지거나 가리는 연기가 불가능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배우의 표정에 대한 섬세한 표현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모션 캡쳐 기술 및 가상 카메라(Virtual Camera)를 개발, CG 캐릭터들을 감정이 살아 있는 실제 인물과 같이 생생하게 재탄생시켰다. 모션 캡쳐(Motion Capture)에 ‘e’를 더해 이모션 캡쳐(Emotion Capture), 즉 감정까지도 CG화 한 것이다.
먼저 이모션 캡쳐는 배우들이 머리에 초소형 카메라를 쓰고 연기를 하면 카메라가 얼굴 전체를 실시간으로 캡쳐해 모공의 움직임까지도 CG화 하는 기술이다. 그간 분장 기술과 모션 캡쳐를 이용했던 영화들이 눈동자의 움직임과 핏줄이 비치는 피부의 투명성을 표현하지 못해 사실성이 떨어졌던 것에 반해, 이모션 캡쳐 기술은 동공 크기의 변화, 눈썹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카메라로 잡아내게 하였다. 때문에 <아바타> 속 CG 캐릭터들은 실제 사람의 피부처럼 강렬한 햇빛이 비칠 때는 핏줄이 살짝 비치는 듯한 반투명한 피부로 표현되었고, 표정과 근육의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CG화 되어 마치 실존하는 생명체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렇게 이모션 캡쳐가 CG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면, 가상 카메라는 연기력을 부여했다. 예를 들어 가상 카메라를 조 샐다나에게 들이대면, 화면에는 조 샐다나가 아닌, 3m 장신에 파란 피부를 가진 나비의 여전사 ‘네이티리’가 보여지는 것이다. 가상 카메라 속에서는 샘 워딩튼과 시고니 위버 또한 그들의 ‘아바타’로, 그리고 세트 환경조차도 아름답고 신비한 판도라로 비쳐져 제임스 카메론 감독으로 하여금 생생한 연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감독이 배우에게 연기를 지시한 후 CG화 하였을 시 발생할 수 있는 오차를 최소화하고, 실제 영화 속 환경에서 캐릭터에게 연기를 지시하는 듯한 방식을 통해 영화의 사실성을 더욱 더 끌어 올렸다. 이렇게 이모션 캡쳐와 가상 카메라를 이용해 제작된 영상은 <반지의 제왕>을 탄생시켰던 웨타 디지털의 섬세한 작업을 거쳐 고화질의 최종 이미지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런 작업 끝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외계 행성의 동물과 식물, 각종 배경 등도 관객들이 자연스레 믿게끔 사실감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이모션 캡쳐와 가상 카메라를 이용해 영화 <아바타>는 디지털 영화 혁명을 이뤄낸 것이다.
이와 함께 영화 <아바타>는 디지털에 기반한 가상현실 기술을 영화에 제대로 접목시키고 있다. 이는 컴퓨터를 이용해 그래픽 영상이나 음성, 촉감, 심지어는 냄새까지도 실제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상의 감각으로 설정하여 이를 조합시킴으로써, 가상의 현실을 만들어 내는 기술을 말한다.
이 가상현실의 세계는 현실에 구애 받지 않고 상상의 세계를 현실과 같이 만들어 낸다. 인체의 눈, 귀, 코, 입, 피부 등 모든 감각기관이 인위적으로 창조된 세계에 몰입됨으로써 자신이 바로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의 세계를 창조한다.
가상현실은 또 하나의 현실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현실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더없이 흥미롭고 경이로운 일이지만, 또 하나의 현실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한편으론 혼란과 두려움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  
<아바타>에서 전직 해병대원으로서 하반신이 마비된 주인공 제이크는 이 가상현실을 통해 두 발을 자유롭게 걷고 뛰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어쩌면 선천성 또는 후천성 신체 장애를 지닌 이들에게 있어 다가올 가상현실의 세계란 더없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상현실의 세계에서는 실제 현실 세계에서의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평등한 조건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한계는 어디일 것인가? ‘아바타’와의 링크 시간이 늘어나고 나비족들과 함께 어울리는 과정에서 아쉽게도 ‘아바타’로서의 접속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온 제이크는 “이 곳이 꿈이고 저 곳이 현실이었으면---" 하며 진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지 않는가. 마치 장자의 ‘나비의 꿈’처럼 말이다.

스토리 - 메시지를 향한 재미와 감동의 여정
<아바타>의 스토리엔 대해선 찬반 양론이 극렬히 갈리는 편이다. 스토리 자체가 신선하고도 감동적인 충격이었다는 호평에서부터 스토리 구성이 허술하다거나 심지어 표절 운운까지의 악평도 뒤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아바타>의 전체적 스토리부터 다시 살펴보자.

가까운 미래, 인류는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판도라라는 행성에서 대체 자원을 채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판도라의 독성을 지닌 대기로 인해 자원 획득에 어려움을 겪게 된 인류는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Na’vi)’의 외형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 원격 조종이 가능한 새로운 생명체 ‘<아바타>’를 탄생시키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제이크는 하반신이 마비된 전직 해병대원으로 <아바타> 프로그램에 참가할 것을 제안 받아 판도라에 위치한 인간 주둔 기지로 향한다. 그 곳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된 제이크는 자원 채굴을 막으려는 나비족 무리에 침투하라는 비밀임무를 부여 받는다. 임무 수행 중 ‘나비’족 여전사 네이티리를 만난 제이크는 그녀와 함께 다채로운 모험을 경험하면서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나비족과의 공감대를 서서히 형성해 간다.
하지만 인류와 나비족간의 피할 수 없는 대규모 전투가 시작되면서 제이크는 정작 인류의 편이 아닌 토착민 나비족의 전사가 되어 앞선 문명과 기술력으로 자연과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인류에 대항해 싸우게 된다.  

위의 줄거리에서 보듯, <아바타>의 스토리 구성은 대표적인 “권선징악 + 그 사이에서 꽃피는 서로 다른 진영의 남녀간 사랑” 구조를 띠고 있다. 이러한 스토리 구성은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 <포카혼타스>, <원령공주>는 물론이고 전래동화에도 나올 만큼 흔한 스토리 구성이며, 그 기원을 따지기조차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들을 본다면, <아바타>의 스토리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허술하다는 지적을 받을 만큼의 스토리는 전혀 아니라고 본다. 필자는 수많은 SF 영화 중에 이 정도로 짜임새 있고 스토리가 끊기지 않는 영화는 별로 보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발단으로 시작해 모험, 로맨스, 갈등, 전쟁, 거기에 영상미학과 감동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씬이 그야말로 짜임새 있고 적절하게 구성되었다. '익숙한 스토리'일 뿐 쓸데없는 스토리나 연출은 없었으며, 모든 시퀀스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전개되었던 게 필자의 생각뿐 아니라 대다수 관객과 평단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사실, 카메론의 완벽주의 성향을 봤을 때, ‘허술한’ 스토리를 들고 나왔다는 평가는 전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참고로 <아바타>의 시나리오는 카메론이 이미 고교 시절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0여 년의 치밀한 작업 끝에 시나리오를 완성시키고 이 시나리오를 영상화 할 수 있는 기술력이 되기까지 그는 기다렸다. 결국, 이 시나리오와 스토리는 이미 30여 년쯤 전부터 쓰여지기 시작하여 18년 전에 완성되었고, 2005년 드디어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 4년 만에 <아바타>를 완성시킨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카메론이 시나리오를 마친 후에도 자그마치 14년 동안 기다린 것이다. 영화를 완성할 ‘기술력’이 될 때까지. 정말 완벽 추구의 '괴물'이 아닌가.
또한, <아바타>의 모든 출연진들은 한동안 하와이의 한 정글을 누비면서 정말 하나의 부족처럼 지냈다고 한다. 연기나 연출에 있어서 좀더 사실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 정도로 '완벽'이란 두 글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허술한 스토리로 세상에 나왔을 것인가?
사실 세상에는 <아바타>보다 훨씬 재미있고 훌륭한 상상과 스토리도 셀 수 없이 많을 것 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과연 대중에게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그것도 12세 관람가 SF 판타지 영화로서 대상 연령을 생각해서 지루해지지 않는 구성을 위해 포인트 지점마다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아바타>는 정말 훌륭했다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아바타>의 중심 스토리는 뻔하고도 진부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어떤 누구도 이 중심 구도를 이렇게까지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풀어내진 못했다.  
원래 재미있는 스토리의 필수 요소들은 보통 이렇다. 주인공이 완벽하지 않을 것, 주인공이나 그 아이템의 능력이 성장하는 구도일 것, 선과 악이 공존할 것, 악의 세력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질 것, 마지막 순간까지 악의 세력은 남아 있을 것, 해피앤딩이 되어야 할 것 등---. <아바타>는 바로 이런 요소들이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짜임새 있게 고루고루 잘 들어 차 있다. 결정적으로, <아바타>는 이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절묘할 정도로 관객들 가슴 깊이 찔러 넣는 가장 적합한 스토리 전개를 보이고 있지 않는가. 바로 이것이 영화 <아바타>의 스토리의 힘인 것이다.

메시지 - 영화의 상징과 의미를 넘어 인류의 이상향 제시
사실 아바타를 평가하는 데 있어 제일 주목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메시지’이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의 기술력과 스토리 역시 이 ‘메시지’란 종착역을 위해 지나는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메시지 또한 많은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메시지란 찬사로부터, 단지 이전의 여러 영화에 등장했던 메시지들의 ‘짜깁기’에 불과하다는 날선 지적까지.
그 논란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우선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들과 모티브나 설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는 지적과 논란이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서 ‘자연보호’에 관한 메시지는 <원령공주>와 닮았고, 전투 장면은 <천공의 성 라퓨타>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장면에서 적어도 모티브 정도는 부여 받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들은 대부분 자연보호의 중요성, “인간은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는 데 <아바타> 역시 거기에 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영화 <아바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 중에서 특히 <원령공주>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스토리 라인에서 유사한 점들이 많다. <원령공주>에서 재앙신이 마을을 공격하지 못하게 막다가 재앙신에게 한쪽 팔을 공격 당한 주인공 소년이 점점 썩어가는 팔을 치유하기 위해 감행하는 여정은 영화 <아바타>에서 하반신 장애인 제이크가 판도라의 행성으로 가 신체상의 핸디캡을 가상현실 속에서나마 극복해 나가는 과정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또한 종국에는 이들 두 주인공들이 자연을 파괴하려는 인류의 음모에 대항한다는 점에서도 유사점들이 발견된다.  
끝없는 욕심을 채우려 자연의 질서를 무참히 파괴하는 인간 무리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러한 인간들의 자연 파괴 음모와 획책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하는 원령공주와 소년을 ‘선’으로 규정한 점 또한 영화 <아바타>에서 스파이 임무를 부여 받았던 주인공 제이크가 오히려 인류라는 ‘악’에 대항해 토착민 나비족들과 하나가 되어 판도라 행성을 지켜내는 ‘선’의 전쟁을 치르게 된다는 대결 구도 역시 비슷하다.
폭포가 내리는 공중 섬들도 미야자키 감독의 또 다른 작품 <천공의 성 라퓨타>를 연상시킨다. ‘라퓨타’는 「걸리버 여행기」에서 ‘떠다니는 섬’이라는 뜻으로 '랖'은 '높다', '운타'는 '총독'을 의미하며 두 단어가 합쳐 ‘라푼타’지만 그곳에서는 ‘라퓨타’로 부른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걸리버 여행기」 안에서 전해져 오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섬 라퓨타 제국과 그 라퓨타 제국을 하늘에 떠 있게 하고 하늘을 나는 배를 움직이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비밀스런 전설의 돌인 ‘비행석’의 비밀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파란만장한 모험 활극이다. 주인공이 라퓨타인의 수호물인 목걸이를 해적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쫓고 쫓기며 천공의 성 라퓨타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연 커다란 섬이 중력을 이기고 하늘을 떠다닌다는 것이 가능할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과학자들의 몫으로 돌리기로 하고, 일단 영화 <아바타>에서 보여지는 판도라라는 행성의 배경에서 라퓨타와 무척이나 닮아 있는 하늘의 섬들은 <천공의 성 라퓨타>와 마찬가지로 「걸리버 여행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점에서 그 맥을 함께 한다. 영화 <아바타>에서 주인공 제이크가 나비족 전사로 거듭나는 과정과 결정적으로 그들의 신뢰를 얻었던 것 역시 라퓨타에 올라 하늘을 나는 비룡의 등에 올라타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여기서는 영화 평론적 입장에서 표절 의혹보다,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과 장대한 스케일 속에서도 때론 빈약하고 공허한 메시지와 알 수 없는 허전함을 지울 수 없었던 소위 블록버스터급 헐리우드 영화에 동양적 정신세계와 사상이 접목돼 그러한 ‘빈약함’과 ‘공허함’, ‘허전함’ 등을 조금 덜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지점에 초점을 맞추어 보기로 하자.
그런 면에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는 생태주의적 각성과 위대한 자연의 섭리 앞에서의 자기 성찰이라는 면에서 접근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으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들에서 표현만 베꼈지 정신은 흉내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예로부터 전통적으로 자연을 존중하고 순응하고자 했던 동양적 사상과 서양의 앞선 인위적 기술력과 방대한 자본력이 조우한 영화 <아바타>는 적어도 “어떠한 기술력에도 올곧은 철학적 배경은 필요하다”는 교훈을 일면 시사한다. 물론 자연주의적 사상과 철학이 동양에서만 존재해 온 것은 아니지만, <아바타>는 “자연과 인간 존중,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공존 추구”란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한 ‘선’한 철학적 배경 위에 나온 기술력의 집합체란 점에서 우리는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영화 <아바타>의 가장 큰 메시지는 우리가 잃어버렸던 이상적인 공동체를 새삼 일깨워 주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첨단의 기술력과 매력적인 스토리로 너무나 생생히 보여주었다. <아바타>가 지향한 유토피아는 ‘완전한 공동체’였다. 단 한 명도 소외받지 않는, 단 한 명도 차별받거나 착취당하지 않는 완전한 공동체. 거기엔 양극화도 없고 조금의 신분 격차도 없었다. 함께 먹을 것을 구하고, 함께 나눠 먹고, 함께 모여 사는, 모두가 모두에게 따뜻한 공동체였다. 그 공동체에는 군림하는 사람도 없었다. 독재라든가, 억압, 권위주의, 통제 같은 것들의 그림자조차 그곳에선 찾을 수 없었다.
<아바타>의 유토피아에는 사람 사이의 우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인간은 결코 자연 위에서 군림하지 않았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 소통하며 거대한 생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어떤 생명도 함부로 버려지지 않았다.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모두 연결된 공동체의 매력에 그 수많은 관객들이 찬사를 보낸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영화의 상징과 의미를 넘어서 인류가 잃어버렸던 인간과 자연의 존재의 이유와 이상까지 보여주었던 영화 이상의 것이었다.  
반면에 영화 속에서 기존의 인간세상은 전쟁, 폭력, 착취,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독단적 이익추구 등 혐오스런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그 자체이기도 하다. <아바타>에서 인간들이 자원 개발 이익을 독식하기 위해 외계인 원주민을 공격하는 것은, 자원을 노리고 약소국을 침략하거나 개발 이익을 위해 철거민들을 내모는 모습을 저절로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이런 인간세상이 얼마나 잘못됐음을 말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 수많은 관객들이 공감을 표시한 것이 바로 <아바타>의 신화적 흥행으로 나타난 것이다.
영화 <아바타>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유토피아를 보여주고 있다. 사랑과 우애와 배려가 넘치는, 자연과 그대로 어울리며 소통하는, 따뜻하고도 완전한 공동체. 그런 공동체가 실현되어야만 우리가 진정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웅변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아바타>의 진정한 메시지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그런 공동체를 지향하며 노력할 때, 마치 영화 속에서 주인공 제이크가 외계인 나비족으로 행복하게 재탄생하듯이, 우리 사회가 행복한 유토피아로 재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윤 세 민
경인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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