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나리
[기고] 미나리
  • 이천설봉신문
  • 승인 2024.04.01 16: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나리

한 문 석 (요셉)선교사
한 문 석 (요셉)
선교사

내 고향 이천시 신둔면 수광리를 찾았다. 수광리 향토문화보존회에서 신둔면 수광리의 역사와 문화 책 출판기념회를 열었고, 많은 사람들과 내빈들이 참석해 자리를 기념했다. 

출판기념회는 성황리에 끝났다. 고향을 다시 찾으니 감회가 새롭다. 오랜 시간이 흘러 찾은 내가 살던 마을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도 변했다.

복숭아꽃, 살구꽃 등 아름다운 꽃들이 이곳저곳 피어나던 내 고향. 작은 집, 큰 집, 윗집, 아랫집, 오순도순 모여 살며 사이좋게 한 마을을 이루던 때를 회상해 보았다. 과거는 저 멀리 가고, 어느덧 현대식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과거를 되짚어 본다. 60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나라는 많은 것이 변했다. 새마을운동이 전개됐고, 산업화 추진이 이뤄졌다. 20세기에 전쟁을 치른 나라였으나, 한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눈부신 변화와 발전을 이뤘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공업 산업화가 본격화되고, 고속도로 건설을 통해 전국이 일일생활권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가 하면 수출을 통해 한국은 세계를 향한 걸음을 뻗었다.

이 기간 동안 농업인구는 계속 줄어들었다. 땅 위에서 몇 천년 동안 실시되어 온 농경사회가 마침내 공업사회로 변한 것이다. 오랫동안 내려오던 보릿고개도 잊어갔고,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삶을 유지하던 굶주림도 사라져 갔다.

전통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변화함에 따라 생활 주변과 생활 감정도 변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마을’, ‘집안’, ‘어른’과 같은 전통사회를 상징하는 단어들도 차츰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금수강산이 변했다. 수광리 마을도 변화의 물결을 피해 갈 수 없었으리라.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마을회관 안에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웃으면서 서로 대화를 나눴다. 점심도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능률과 합리화로 강조하는 공업사회, 더 나아가 현대사회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마을은 하나의 공동체로 존재한다. 의식구조는 변하지 않고 전통적인 가치관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어른 공경도 마찬가지이다.

마을회관 앞 국도 아래에는 저수지가 여전히 있다. 저수지 가운데에는 작은 섬이 있어 참으로 아름다웠다.

먼 과거에는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가뭄이 지속되면 어떻게든 저수지 물을 끌어다가 논에 대고 모내기를 했다. 저수지 물은 수광리 마을 사람들에게 생명수와도 같았다. 저수지 옆의 위쪽으로는 오래된 정자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생명수를 길러가던 공동우물이 있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이곳에서 목을 채우고 생을 이어갔다. 아침저녁으로 물지게를 지거나,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어갔다. 아직도 그 모습이 선하다.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우물이었다. 우물은 땅을 깊이 파서 샘물이 솟아 나와 물이 고여 있는 곳이다. 두레박으로 퍼올려 윗물을 사용한다. 우물가는 수시로 사람이 오가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정다운 공간이었다. 길 가던 나그네는 물로 목을 축이고, 지친 몸을 쉬기도 했다.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어린 나는 물양동이를 이고 가는 엄마 뒤를 따라 우물 주위를 왔다 갔다 했다. 우물가 커다란 정자나무에 기대거나, 나무 뒤로 숨기도 하던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마을 사람들은 정자나무 그늘에 모여 더위를 피하고,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우물가는 모든 이의 사랑방이자 쉼터였다.

우물 옆에는 디딜방앗간이 있었다. 디딜방앗간은 곡식을 찧거나 빻았고, 떡방아를 찧는 등 가족의 양식을 마련하는 큰 역할을 했다. 기계식 방앗간이 생긴 후,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디딜방앗간 뒤에는 큰 오동나무가 있었다. 디딜방앗간 근처를 지나던 때를 회상한다. 

하늘은 높고 푸르다. 오동나무 잎이 하나, 둘 떨어진다. 디딜방아 소리는 조용한 마을을 깨운다. 정자나무에 기대 디딜방아 소리에 귀 기울인다. 옹기종기 모인 초가집 굴뚝에서 뭉게구름 같은 하얀 연기가 올라온다. 구수한 저녁밥 냄새도 어디선가 나는 것 같다. 그리운 날이다.

우물 앞에는 조그마한 논이 있었다. 논에는 미나리를 재배했다. 작은 논에서 미나리가 싱싱하게 자랐다. 잎줄기는 채소와 같고, 특유의 향긋한 향이 났다. 바람에 일렁이는 미나리는 뜯지 않아도 모습만으로 아름다웠다.

예부터 미나리는 각종 질병을 예방하는 음식으로 먹었다고 한다. ‘미나리 박사’ 이희재 한의사는 책 ‘미나리를 드셔야겠습니다’를 통해 미나리의 놀라운 효능을 조명했다. 친숙한 미나리를 먹는 것으로 만성염증을 해소하고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미나리를 끓여 마시는 미나리 수근차를 아침저녁 수시로 먹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수광리는 ‘미나리 마을’이라는 별칭이 있다. 옛날 한양에 있는 약재상들이 수광리 와서 미나리를 많이 사가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미나리 마을로 불린 게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를 만나 ‘내가 사는 고향은 미나리 마을’이라 칭하는 게 좋았다. 태어나고 자란 나의 고향. 가족의 숨결이 머무는 고향. 평화롭고 아늑하고, 따스한 나의 고향. 향긋한 미나리를 마주할 때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피어난다.

하늘을 올려 본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하늘은 변하지 않은 채 높고 푸르다. 하염없이 구름이 흘러간다. 아름다운 저수지, 오래된 정자나무와 우물, 디딜방앗간은 기억 속에만 남았다. 시절은 지나갔지만, 추억은 영원히 자리한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고향의 반가움과 그리움을 간직한 채 집으로 돌아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