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칼럼] 5월, 다시 ‘어린 왕자’에게 듣는다│박수진 시인, (사)한국동요문화협회 공동대표
[설봉칼럼] 5월, 다시 ‘어린 왕자’에게 듣는다│박수진 시인, (사)한국동요문화협회 공동대표
  • 이천설봉신문
  • 승인 2023.05.0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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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다시 ‘어린 왕자’에게 듣는다 
 

박수진시인(사)한국동요문화협회 공동대표
박수진
시인
(사)한국동요문화협회 공동대표

올해는 ‘어린 왕자’가 태어난 지 80년 되는 해이다. 명작 동화 《어린 왕자》는 1943년 4월 미국 뉴욕에서 출간되었다. 프랑스의 비행사이자 작가인 생텍쥐페리(1900~1942)가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으로 망명한 뒤 뉴욕 근처의 한적한 곳에 머물며 비행기 고장으로 아프리카 사막에 불시착했던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창작 동화이다. 

어린 왕자는 작품이 지닌 탁월성 덕분에 출판되자마자 바로 고전이 되었다. 국적과 종교,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글자를 아는 지구촌 사람들의 필독서가 되었던 것이다. 

어린 왕자는 우리가 한두 번 읽고 독서노트에 기록해 두고 마는 책이 아니다. 글을 쓰는 작가들이 문학적 서정의 뿌리를 어린 왕자에 두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생전의 법정 스님도 늘 머리맡에 두고 읽은 책이 어린 왕자라고 한다. 필자 또한 어린 시절 편지를 쓸 때부터 지금까지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수시로 읽어보는 마음속 ‘경전’이다. 스토리를 이어가는 상상력과 작가가 직접 그린 삽화도 인상적이지만, 그보다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밑줄을 치게 되는 별빛 같은 문장들이 첫사랑의 기억처럼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심 회복과 따뜻한 가슴을 위해 다시 읽기를 권하면 사람들은 늘 바쁘다는 핑계를 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람들은 이제 시간이 없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되었어. 상점에 가서 다 만들어진 물건을 사는 거야. 하지만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어.”라고 말한 어린 왕자의 말을 떠올린다. 

시간이 없어 책 읽기를 못 하고, 시간이 바빠 서로를 길들여 사귀는 진정한 친구가 없으니 외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어린이를 닮은 5월, 어린 왕자에 나오는 빛나는 말 몇 마디라도 간추려서 들려주고 싶다.   

“어른들은 언제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여섯 살 어린이가 그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보고 모자라고만 하는 어른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렇다. 우리 어른들은 글자는 읽지만 그림은 이해하지 못하고, 아는 것은 알지만 모르는 것을 잘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꾸 아는 체하고 가르치려 든다. 그것이 아이들과 멀어지는 가장 큰 이유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나도 숫자밖에 모르는 어른이 될 수 있다.” 얼마나 가슴 찔리는 얘기인가. 어른인 우리는 작고 소중한 것에는 관심이 없고 집값이나 평수, 월급이나 연봉, 갭 투자로 번 돈의 액수, 어느 인기 가수의 1회 출연료 등 숫자에 가치를 두고 숫자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지 않은가? 

“어느 날은 해지는 것을 마흔네 번이나 본 적도 있어. 그런데… 몹시 슬플 적엔 해 지는 게 좋아져….” 어린 왕자가 살던 별은 의자를 몇 발자국만 옮겨 놓으면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행성이었다. 나는 늘 이 대목에서 가슴이 먹먹했다. 어린아이가 얼마나 슬픔이 컸으면 하루에 마흔네 번이나 해지는 풍경을 보았을까. 지금 우리 어린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지구별 사람들은 평생 해지는 것을 몇 번이나 보고 살까? 삶의 유한성과 함께 살아가면서 맞을 슬픈 날을 짐작해 보면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꽃이 하는 말은 절대 귀담아들으면 안 돼. 그냥 바라보고 향기만 맡아야 하는 거야. ~ 그 꽃의 대단치 않은 심술 뒤에 애정이 숨어 있는 걸 눈치챘어야 하는 건데 그랬어. 꽃들은 앞뒤가 어긋나는 말을 너무나 잘하니까.” 꽃은 여인이고 아내일 수 있다. 투정과 심술 뒤에 애정이 들어 있다. 사실 이 말은 가정을 이루고 한참을 살아본 후에 알았다. 그 꽃은 사랑하는 사람이고 아내일 수 있다. 어느 해설가는 작품 속 꽃인 장미가 작가인 생텍쥐페리가 프랑스에 남겨두고 온 아내일 거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정말 소중한 것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은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서 바친 시간 때문이야.” 등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튀어나오는 보석 같은 문장에 마음을 빼앗겨 한두 번 《어린 왕자》를 읽은 독자들은 동화의 마지막 부분에 대한 기억이 흐린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모든 문학작품이 그렇듯이 최고의 감동은 결말에 있다.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문학동네, 2018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문학동네, 2018

지구별에 온 지 만 일 년이 되는 날, 어린 왕자는 자기가 떠나온 별로 돌아가기 위해 치명적인 독을 가진 사막의 노랑 뱀에게 자신을 물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때 어린 왕자가, “거긴 너무 멀어. 그래서 나는 이 몸을 가지고는 갈 수가 없어. 너무 무겁거든.”이라고 하는 말에 그만 눈을 감고 말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 착하고 작은 몸인데도 육신을 가지고는 갈 수 없는 곳이라니……. 우리는 어떻게 어떤 추억을 가지고 저마다의 별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온 시와 가곡이 제법 알려진 필자의 <나의 별에 이르는 길>이다. 

경제적인 부는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세상이 갈수록 어지럽고 험악해지는 것은 맑고 순수한 동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린이를 닮은 푸르고 푸른 5월, 아이들과 함께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나 보기를 권한다. 한때라도 가정이나 찻집에서 가까운 사람들과 둘러앉아 저마다의 어린 왕자를 추억하며 그의 말에 귀 기울여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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