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성청 안전보건공단 경기동부지사 건설안전부장
[기고] 이성청 안전보건공단 경기동부지사 건설안전부장
  • 이천설봉신문
  • 승인 2023.03.30 14: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속 5Cm, 그리고 안전의 속도

이성청 
안전보건공단 경기동부지사 건설안전부장

벚꽃, 개나리, 진달래가 피는 봄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초속 5Cm(2007년)’는 젊은 청춘 남녀들의 사랑 이야기이다. 

떨어지는 벚꽃 잎을 맞으며 길을 걷던 소년 타카키, 소녀 아카리는 첫사랑을 느꼈다. 중학생이 되어 아카리가 먼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자 아카리를 그리워하던 타카키는 아카리를 찾아가 추억을 만든다. 우여곡절 끝에 성인이 되어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던 그들은 벚꽃이 만개한 봄에 철도에서 마주치지만, 과거는 과거였고 그냥 서로의 삶을 향해 나아가며 영화는 허무하게 끝이 난다. 초속 5Cm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라고 한다.

사람들이 치열하게 구조물을 만들어 가는 건설현장에서 안전이라는 개념의 적정 속도는 얼마일까? 

‘빨리빨리’ 의식은 아직까지도 건설현장에 지배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이다.

많은 건설현장에서 2-Day Cycle, 3-Day Cycle을 자랑스럽게 말하여 공기를 단축한 결과를 그 현장의 최대 성과로 포장하기도 한다. 이렇듯 공사는 빨리 진행해야 하는데, 안전은 이것저것 챙겨봐야 하므로 둘 사이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효율-안전의 절충성(ETTO)’이란 개념을 생각해 보자. ETTO란 Efficiency-Thoroughness Trade-Off의 약자로, 에릭 홀나겔(Erik Hollnagel)에 의해 제안된 이론이다. 현 시스템 내의 모든 기능 요소들이 정상적으로 보일지라도 어느 정도의 변동성(Variabilty)을 지니고 있으며, 이 변동성은 효율과 안전성(완전성) 사이의 균형의 결과로 결정된다는 원리이다. 우리는 이러한 균형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이윤과 인력절감 쪽으로 추를 기울이기 쉬우며, 이는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최근 3월 경기도 이천지역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두 건의 사망사고는 ‘효율-안전의 절충성’에 있어 많은 점을 시사한다.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에서 발파작업용 천공기의 운전자가 천공기 드릴이 회전하는 상태에서 드릴 부품을 교체하려다가 신체가 말려 들어가며 사망하였고, 물류창고 건설현장에서는 고소작업대차를 타고 이동하던 근로자가 대차의 상부 난간과 인근 벽체 철물 사이에 머리가 끼어 사망하였다. 

천공기의 드릴을 최대로 감속하거나 멈추고 작업했더라면, 고소작업대차에서 내려 걸어서 이동했거나, 혹은 탑승한 상태였더라도 위험부위만큼은 최대한 천천히 이동하였다면, 후속 작업의 속도는 몇 분 가량 늦어졌겠지만 소중한 생명을 잃지는 않았으리라.

두 건의 사고가 더욱 안타까운 점은 과거에서 유사 사고가 꽤 있었기에 충분히 예견될 수 있는 사고였음에도 현장에서 막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건설현장은 일상적인 작업 상황에 대해 원청 관리감독자들, 협력업체 관리감독자들, 심지어 근로자마저도 충분한 지식 습득과 교육을 통해 마음속에 충분한 경계심을 형성시켜야 하나 그러지를 못하고 있다.  

매너리즘 즉, 반복되는 일상으로 인해 쉽게 타성에 젖고 무감각해지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평범한 상황에서의 사고를 막으려면 매일매일 경계하고 절충이나 타협하지 않아야 하며, T.B.M과 안전순찰 활동으로 위험 상황을 수시 발굴하여야 한다. 특히 해당 작업을 직접 수행하는 협력업체의 관리감독자는 반드시 사고 사례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쌓고 안전 작업절차 의식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제조업과는 달리 건설업은 하루하루, 시시각각 변하는 속도가 빠르다. 이러한 특징은 현장 관리자들의 안전 의식을 공사 속도에 쉽게 타협하게 만들며, 이는 시스템의 변동성을 커지게 하여 수시로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안전이라는 개념의 속도, 이는 시스템의 변동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속도여야 한다. ‘익숙한 것도 조심조심’, 건설현장의 모든 관계자들이 성심으로 참여하여 안전문화로 조성되어야만 완성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