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안, 쏘리, 스미마셍│박수진 시인, (사)한국동요문화협회 공동대표
[칼럼] 미안, 쏘리, 스미마셍│박수진 시인, (사)한국동요문화협회 공동대표
  • 이천설봉신문
  • 승인 2023.01.1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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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쏘리, 스미마셍

                           박수진시인작사가(사)한국동요문화협회 공동대표
박수진
시인
작사가
(사)한국동요문화협회 공동대표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과 양심에 따른 염치가 있다는 점이다. 염치(廉恥)라는 말은 흔히 ‘~ 없다’라는 말과 결합해 부정적 의미로 쓰이지만, 이 말의 참뜻은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공자는 중용(中庸)에서 사람이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기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했다. 염치 있음이 용기를 생기게 하고 그 용기가 자기 잘못을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또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재상이었던 관중(管仲)도 ‘예(禮)·의(義)·염(廉)·치(恥)’를 일컬어 국가를 지탱하는 4가지 덕목이라 하였다. 이때도 염(廉)은 ‘자기의 결점이나 잘못을 감추지 않는 것이요. 치(恥)는 스스로 창피함을 알아 부정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다시 말해 남에게 신세를 지거나 폐를 끼치거나 할 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상태가 염치이다. 인간의 심성 안에 있는 이 염치와 양심이 만들어 낸 대표적인 말이 제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하겠다는 약속인 사과이다. 

그래서인가 예로부터 예의를 중시하는 우리에게도 잘못에 대한 사과의 말이 다양하다. 이를테면, 미안(未安)이라는 말에서부터 송구(悚懼), 죄송(罪悚), 불찰(不察), 반성(反省), 성찰(省察), 사죄(謝罪)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정치인과 권력자들 사이에 분명한 실수나 잘못을 해 놓고도 사과를 하지 않고 뭉개거나 ‘유감’이라는 뜨뜻미지근한 말로 사과에 대신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한자어인 유감(遺憾)의 사전적 뜻은 ‘마음에 차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있는 느낌’이다. 

점잖아 보이는 이 말은 외교 관계에 주로 등장하는 말인데, 주체와 대상이 애매해 사과받는 피해당사자도 뒷맛이 개운치 않거니와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그야말로 ‘유감’이 남는다. 그보다는 차라리 일반적으로 쓰는 ‘미안’이나 더 낮은 자세인 ‘죄송’이라는 말을 쓰면 훨씬 깔끔하고 명쾌한 사과가 될 텐데도 굳이 유감이란 말로 얼버무린다.

외국말의 경우, 우리말 ‘미안’에 해당하는 사과 말에 영어의 ‘쏘리’(아이 엠 쏘리)와 일본의 ‘스미마셍’이 대표적인데 이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말이다. 그만큼 저들이 이 말을 아주 일상적으로, 그리고 다양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미국 사람들은 남에게 불편이나 폐를 끼쳤을 때뿐만 아니라 장례식장에서 문상할 때도 ‘아이 엠 쏘리’라고 한다는 것이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속에 고인에게는 죽음을 앞두고 보냈을 가장 무겁고 아픈 시간을 모르고 지낸 무심함에 대하여, 유족에게는 슬픔을 온전히 함께하지 못하는 데 대한 마음의 표현이라는 설명을 듣고 공감이 갔던 기억이 있다.

일본 사람들이 평소에 입에 달고 사는 말은 ‘스미마셍’이다. 일본을 여행할 때 필수적으로 알고 가야 할 몇 단어 중 하나이다. 미안합니다, 실례합니다, 죄송합니다 등 여러 상황에 일본인들이 두루 쓰는 사과와 겸양의 대표적인 말이다. 복잡한 전차 안에서 남에게 발을 밟히고도 ‘스미마셍’이라 한다는 말에는 다소 지나친 배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들이 생활화한 사과의 자세와 겸손한 표현만큼은 우리가 꼭 배워야 할 점이다.         

중요한 문제 해결방식인 사과에도 법칙이 있다. 

첫째는 자발적이며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하고, 둘째는 진심을 담아 피해 상대방에게 직접 해야 하며, 셋째는 어떤 조건도 달지 말아야 하고, 넷째는 구체적인 내용과 함께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이 들어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과이다. 이렇게 하는 사과가 당장은 체면을 구기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오히려 인간적인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며, 더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게 해 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빈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실수나 실언을 하며 살아간다. “잘못이 있으면 인정하고 고치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역시 공자의 말씀이다. 사과에 인색하면 증오와 갈등이 커져 세상이 험악해진다. 새해에는 정치권을 비롯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실수나 잘못이 있을 때마다 머리 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보며 살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독자 여러분, 어떤 어려움에도 꺾이지 마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송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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