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칼럼] 넘치는 쌀│오흥재 경영학박사
[설봉칼럼] 넘치는 쌀│오흥재 경영학박사
  • 이천설봉신문
  • 승인 2022.11.1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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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흥재수필가경영학박사
​오흥재수필가경영학박사

쌀은 바로 우리 조상의 혼이요, 우리 민족의 생명산업이다. 그만큼 쌀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한가치를 가지고 있다. 쌀이 화폐처럼 쓰이던 시대가 오래지 않다. 지금의 노년층만 해도 도시에 나가 공부할 때 한 달에 쌀 닷말이나 너말을 내고 하숙 생활을 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닷말짜리 하숙이면 밥상에 가끔 계란 프라이가 올라올 정도로 반찬이 좋았고, 주인집 식구들의 대우도 좋았다. 너말이면 채소밭이라 할 만큼 푸성귀 반찬뿐이었다. 방학이 끝나면 쌀자루를 메고 버스를 타는 일이 부끄럽고 번거로워 돈 주고 하숙하는 친구를 부러워하는 학생도 많았다. 

수학여행이나 소풍 때도 배낭에 쌀을 짊어지고 다녔다. 밥값, 잠자리 값을 그 쌀로 계산하였다. 의연금이나 성금을 걷을 때 돈이 없는 사람은 쌀로 대납하기도 했으며 사친회비(등록금)를 쌀로 내는 학생도 많았다. 

동네에 방물장수가 오면 시골 아낙네들은 쌀을 퍼주고 참빗도 사고 고무신도 샀다. 산신제나 단오축제 같은 동네잔치가 열릴 때면 살림 형편에 따라 쌀을 거두어 경비로 썼고 이웃집에 혼사나 초상이 있을 때 쌀로 부조를 하기도 했다. 

쌀 팔아 등록금을 내고 대학 다닌 사람들에게 모든 가치와 생각의 기준은 언제나 쌀이었다. 취업해서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쌀 세 가마 값이 안 된다고 실망했던 기억을 가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 값이 세상살이 초년병들이 약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기준이었다. 

쌀 몇 가마니에 연탄 몇백 장 들여놓으면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마음이 훈훈하였다. 돈이 있어도 쌀을 살 수 없었던 시대는 사람들에게 쌀보다 귀한 건 없다. 그러니 화폐 기능을 한 것이다. 

요즘 쌀이 남아돌아 처치 곤란이라는 뉴스는 우리가 지금 어느 세상에 살고 있는지 헷갈린다. 쌀은 세계 인구의 절반의 주식이다. 영양학적으로 거의 완벽한 식품이고, 별다른 가공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훌륭한 식사가 가능하다. 이처럼 일류에게 도움을 주는 곡식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현대에 들어와서 농업 기술의 발달과 품종의 개량 영농의 기계화로 쌀을 세배 이상 수확을 하여 옛날보다는 편리한 영농을 하고 있으나, 쌀 소비가 안 되어 묵은쌀이 미곡처리장에 가득 차 있고 보관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 한다. 가격 하락으로 쌀로 인한 손실로 경영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어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고 하니 옛날 쌀이 부족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상전의 벽해가 된 현상으로 쌀 산업이 많이 바뀌는 세상이다. 

수많은 곡식 가운데 쌀은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밥상을 책임져 온 대표 선수이면서 상징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쌀은 억울하다. 쏟아져 들어오는 서양 대체 식품들과 영양식품에 밀려 그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비만과 성인병의 주점으로 오해를 받아 식탁에서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쌀은 우리 민족의 오랜 에너지원으로써 그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풍부한 식이섬유와 단백질, 지방, 비타민으로 가득한 밥 한 그릇은 어려운 춘궁기를 지켜온 민족의 젓줄이었으며 어려움과 굴곡을 같이 넘어온 전우이자 생명의 근원적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쌀이 남아도는 것은 쌀 생산이 많아서 남아도는 것이 아니라 쌀이 소비가 안 되어 남고 분식용 밀, 옥수수, 잡곡류, 기타 농산물은 너무 부족하여 수입에 의존하는 잘못된 식 관행에서 오는 것이다.  

쌀을 이용한 다양한 먹거리가 연구 개발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농자천하지대본이 다시 되살아나고 쌀은 생명의 근원으로 쌀농사에 긍지를 갖도록 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쌀값 안정 대책은 정부의 몫이다. 정부가 쌀값 문제를 잘 해결하면 우리 농촌은 살아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농업·농촌은 무너질 것이다. 농업·농촌이 무너지면 우리나라의 미래도 암담해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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