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 역사를 보는 눈│부길만 출판역사연구회장
[칼럼] 우리 역사를 보는 눈│부길만 출판역사연구회장
  • 이천설봉신문
  • 승인 2022.10.2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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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를 보는 눈

부길만 출판역사연구회장前 동원대학교 교수문화재위원 역임
부길만 
출판역사연구회장
前 동원대학교 교수
문화재위원 역임

■ 우리 민족과 역사관 

한국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주제는 일차적으로 역사관의 문제이지만, 식민지를 겪은 한국으로서는 민족 문제와 연계되며 다양하게 나타난다. 

첫째, 민족주의 역사관이다. 

민족주의 역사관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국권 회복의 과제와 직결되며 나타나는데, 무엇보다 민족의식을 강조한다. 이 역사관은 탁상 위의 사관이 아니고 국내에서 탄압당하거나 해외를 떠돌며 독립운동을 했던 민족주의자들이 주창한 것이다. 박은식, 신채호 같은 선각자들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둘째, 사회경제사관이다. 

우리 역사를 변증법적 유물사관을 빌려 설명하려는 역사관이다. 한국의 선사시대부터 원시부족국가 시대와 삼국시대,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역사를 유물사관에 의거하여 서술한다. 

셋째, 식민사관이다. 

일제가 한국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고, 우리 민족에게 열등감을 심어주기 위하여 조작한 역사관이다. 조선사편수회 작업을 거치며 방대하고 치밀하게 만들어내고자 했던 역사관이다. 

넷째, 실증주의 역사관이다. 

역사학은 객관적 사실을 밝히는 과학이 되어야 한다는 역사관이다. 이 주장을 내세운 독일 사학자 랑케의 역사 연구는 주변 국가를 군사력으로 통합하여 독일제국을 합리화하는 역할을 했다. 일본은 랑케의 역사관을 내세워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 병합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하였다. 

이 중에서 민족주의 역사관은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관이다. 다만,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현재의 한국으로서는 민족을 바탕으로 세계로 나아가는 역사관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경제 중시의 사회경제사관이나 실증만을 내세우는 랑케의 역사 연구 방법은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아닐 것이다. 최근 일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경제 중심으로 역사를 파악하면서 실증주의 방법론이라는 명분으로 해당 시대의 권력기관에서 만들어낸 통계수치나 데이터를 매개로 역사를 서술하려는 시도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의 커다란 흐름과 시대정신을 놓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민중들의 삶과 괴리된 결론으로 빠지기 쉽다. 이러한 시도는 또한 우리 역사 연구에서 식민사관 학자들과 유사한 사고방식에 젖어들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식민사관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으니, 철저히 폐기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우리 역사를 문화의식과 시민의식이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 문화의식과 우리 역사 

한국 역사를 전쟁이나 영토의 확장 따위로 파악할 경우, 우리는 보잘것없는 역사를 지닌 민족이 된다. 그러나 문화의 힘 또는 문화의식이라는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살피면, 곳곳에서 민족의 위대성이 드러난다. 전쟁 중에 조성한 팔만대장경,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 치열한 역사의식으로 472년간 매일매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디지털 시대에 가장 적합한 한글의 창제 등 그 문화적 위대함을 증명할 내용은 참으로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이 있었기에 한국은 20세기에 들어와 식민지배, 국토 분단, 처참한 민족상잔, 극도의 궁핍 등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21세기 오늘날에는 국가 경제력 세계 10위, 군사력 6위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놀라운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그뿐인가. 최근 영화, 드라마, K-팝, 디자인 등에서 한류 문화가 해외로 퍼져 나가며 세계를 문화적으로 리드하고 있다. 

그 바탕은 문화의식이 발현된 교육과 출판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 교육은 출판이 있어 짧은 시기에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참혹한 6·25전쟁 중에도 시민들은 피난지에서 천막교실을 세워 교육열을 더욱더 불태웠고, 출판인들도 책을 제작해 파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피난지에서의 서적 판매가 시민들의 호응 속에서 호황을 누렸다. 우리 문화사에서 빛나는 <사상계>, <학원> 같은 잡지들이 창간된 것도 바로 전쟁 피난지에서였다. 

■ 시민의식과 우리 역사

우리는 시민의식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살펴야 한다. 시민의식은 다음 세 가지를 그 내용으로 한다.

첫째, 국가의 주인은 왕이나 권력자가 아니라 보통 국민이라는 민주의식이다. 둘째, 우리 민족은 수천 년 동안 숱한 외침과 고난 속에서도 생명력과 자존심을 유지해왔으며 미래에도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역사의식이다. 셋째, 계층·세대·지역·이념 등에 관계없이 우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은 구체적인 일상에서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나간다는 공동체 생활의식이다.

시민의식은 민주 시민사회에서 일어나는 자각이며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다. 한국이 전제주의를 탈피하고 민주제도를 시작한 것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시민의식은 이미 동학혁명과 삼일운동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발아되기 시작했다. 특히 삼일운동 직후 세워진 임시정부의 헌법에 잘 드러나 있다. 1919년 4월 임시정부 수립 시 조소앙, 신익희 등이 기초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라고 선언한다.

이러한 의식은 당시 독립운동에 참여한 선각자들의 공통된 의식이었던 것 같다. 대표적으로 안창호의 연설이 떠오른다. “대한 나라에는 과거에는 황제가 1인밖에 없었지만 금일에는 2천만 국민이 다 황제요. …과거에 주권자가 1인이었을 때는 국가의 흥망은 1인에 있었지마는 지금은 인민 전체에 재(在)하오. 정부 직원은 노복(奴僕)이니,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나 다 여러분의 노복이외다.”

이것은 중국 상하이 교포들의 신년축하회에서 도산 안창호가 했던 신년사인데,  1920년 1월 8일자 <상해판 독립신문>에 실렸던 내용이다. 이러한 생각은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1956년 5월 3일 신익희는 한강 백사장에서 있었던 제일야당 대통령 후보 유세에서 대통령은 국민의 하인이라고 선언한다. “민주 국가에서는 대통령을 하인이라고 불러요. 서번트(servant)라고 불러요.” 이어서 “대통령은 하인, 심부름꾼, 농사짓는 집의 머슴과 같은 존재이기에 국민이 나가라고 하면 언제든지 나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외친다. 

과연 21세기 우리들의 시민의식이 1920년대나 1950년대 선각자들의 시민의식을 뛰어넘고 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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