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가을이 되면│최해필 전 항작사 사령관
내 인생에 가을이 되면│최해필 전 항작사 사령관
  • 이천설봉신문
  • 승인 2022.10.1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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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필 전 항작사 사령관
최해필 전 항작사 사령관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내 인생에 가을이 되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그 시인의 마음이었다면 그는 정말 道通 君者 이상으로 수양을 쌓은 사람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싶다.

흔히 우리들은 가을이 되면 결실의 계절이라고 한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 내내 땀 흘려 가꾸고 김맨다. 가을에 거두어 겨울을 대비한다. 잘난 인생인줄도 모르고 그냥 선조 대대로 뼈를 묻고 살아온 고향산천을 지키면서 사는 농부의 삶을 생각하면 분명코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각자 사는 환경과 연령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우리 인생에 대비하여 생각해 보면 가을은 우리에게 수확의 계절이지만 또한 사색의 계절이기도 하다.

강아지도 한 때가 있다고 하는데 누구든지 지나고 보면 한평생 좋은 시절도 있었겠지만 그럴만한 결실을 누릴 만큼 땀 흘려 노력한 인고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만물이 성장을 멈추고 멈칫하면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느낄 때는,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하고 사색에 잠겨볼 필요도 있다. 그럴 수 있을 때만이 인간은 겸손해 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가을은 우리에게 봄날의 그 화려함도 그립지만, 녹음방초 우거진 여름날처럼 삶의 전성기만을 생각하고 우쭐대거나, 잘 나가던 날의 영화만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냉엄한 계절이기도 하다. 편시춘(片時春)이란 단가(短歌)의 다음 구절이 생각난다.

우산(牛山)에 지는 해는 제 경공(齊景公)의 눈물이요 분수(汾水) 추풍곡(秋風曲)은 한무제(漢武帝)의 설움이라.

유한한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들도 무한한 영광을 영원히 누릴 수는 없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은 눈물의 노래였으니 말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문 공부를 하던 중에 접하게 된 중국 유명인들의 명문들을 만나게 되면 난해한 문장이라는 거북함도 있었지만, 그 글을 쓴 사람들의 일생을 통한 삶의 고뇌(苦惱)를 흠모하게 되고 반복하여 읽다가 어떤 것은 암송을 하게도 된다.

그 중에서도 이 가을에 절절하게 가슴에 울려오는 글이 있다. 바로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이기도 한 구양수의 추성부(秋聲賦)라는 글이다. 그가 가을 소리를 듣고 가을에 관한 생각을 하며 인생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심경을 비춰 본 글이다. 


草拂之而色變
木遭之而葉脫
其所以摧敗零落者
乃其一氣之餘烈

초불지이색변
목조지이엽탈
기소이최패영낙자
내기일기지여열

가을이 풀을 휩쓸면 그 빛깔이 변하고 가을이 나무를 마주치면 그 잎사귀가 떨어진다.
꺾이고 시들고 떨어지는 까닭은 가을의 한 기운이 남기는 준열함에 있다.


봄여름 그리도 무성하던 초목이 어느 것이나 가을이 다가 오면 예외 없이 쇠락해지는데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자라는 장소나 환경을 고려함도 없다는 것이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나라의 대사를 맡아서 국민을 위한다고 하는 많은 정치인들도 이 가을에 자신의 언행을 꼭 한번이라도 엄정하게 되돌아보면서 자기도취에서 깨어나서 한번이라도 그 시인의 말처럼 스스로에게 과연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나 했는지 되물어 보았으면 좋겠다.

당연히 키가 크다거나 힘이 세다고 하여 자연이 특별하게 그들의 인생에 가을이 되어도 ‘너는 무성한 잎을 지닌 채 무궁세를 복락을 누리게 하리라’라고 할 리는 당연히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날마다 매스컴을 오르내리는 많은 정치인들의 한심한 언행들을 보면 그들에게 이 글, ‘추성부’를 한번 쯤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직도 지난날의 영광에 취하여 자기 분수를 모르고 살아가는 초목보다도 생각이 짧은 사람들을 보면 미워하기보다 차라리 안쓰럽기까지 하다.

가을이 오면 먼저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낙엽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소리를 낸다. 나뭇잎에는 단풍이 들어 땅에 떨어진다. 그 전에 푸르던 잎사귀가 노랗거나 붉게 변한 후에 마침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도 과대포장 되어 그의 진면목을 모르던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방편으로 유지해 오던 부질없는 인기들도 자기들이 지난날에 내뱉은 가소로운 가식적인 언어와 행동들에 관한 본색이 드러나게 된다. 의리도 내팽개치고 배신의 정치를 밥 먹듯이 해오면서도 위선의 기간이 지나가면 저절로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면 물러날 줄을 알아야 할 텐데. 가을에 단풍들어 땅으로 떨어지는 초목처럼 가을이 다가오면 물러날 줄을 알아야 할 것인데, 이를 모르고 국민을 위한다면서 외치고 다니니 정말로 안타깝다.

백성들을 물과 같다고 비유한 말도 있다. 물이 배를 띄우지만 그 배를 전복 시키는 것도 물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

전성기 때의 인기도 가을이 오면 점차 사라지고, 미움도 원망도 아까워서 관심 자체가 한없이 얇아지고 잊히게 된다. 지난날의 과오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가 점차 커진다면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지듯이 자기들의 인기도 낙엽처럼 땅에 떨어지게 될 것인 줄을 왜 모르는지 안쓰럽기 짝이 없다.

가을이 와서 낙엽처럼 땅으로 떨어지기 전에 자진하여 물러설 줄을 안다면 법의 심판을 받아 강제로 비참하게 물러나기보다, 스스로 추하지 않은 모습으로 물러나는 것이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으로 기억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추성부 한구절을 인용한다.


嗟乎 草木無情 有時飄零
人爲動物 惟物之靈
百憂感其心 萬事勞其形
有動於中 必搖其精

차호 초목무정 유시표령
인위동물 유물지령
백우감기심 만사노기형
유동어중 필요기정

而況思其力之所不及
憂其智之所不能
宜其渥然丹者爲槁木
然黑者爲星星

이황사기력지소불급
우기지지소불능
의기악연단자위고목
이연흑자위성성

奈何以非金石之質
欲與草木而爭榮
念誰爲之戕賊 亦何恨乎秋聲

나하이비금석지질
욕여초목이쟁영
염수위지장적 역하한호추성


슬프다! 초목은 감정이 없어 때가 되면 날리어 떨어지지만, 사람은 동물이고 오직 만물의 영장(靈長)이다. 온갖 근심이 그 마음을 느끼게 하고, 수많은 일이 그 몸을 수고롭게 하여, 마음속에 움직임이 있으면 반드시 그 정신을 동요시킨다. 

하물며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바를 생각하고 자신의 지혜가 할 수 없는 바를 근심하는 경우이겠는가. 짙게 붉던 얼굴이 마른 나무처럼 되고, 까맣게 검던 머리가 허옇게 되는 것이 마땅하다. 

어찌하여 금석처럼 강인한 바탕을 지니지 않았는데, 초목과 더불어 무성함을 다투고자 하는가. 누가 이것에 대해 상하게 하고 해치는 가를 생각해보면 또한 어찌 가을 소리를 한탄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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