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이정하 시인
특별 인터뷰│이정하 시인
  • 이천설봉신문
  • 승인 2021.07.08 14: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란 한 두 사람의 가슴에 들어가서 위안을 주면 충분히 좋은 시”
이정하 시인
이정하 시인

시를 가슴에 품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씨앗을 담는 것과 같다. 시는 사람을, 삶을, 사랑을 나아가게 한다. ‘나 스스로 사랑이 되면 그뿐/그대 나를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너는/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등의 시어로 큰 울림을 주는 우리 시대 최고의 감성시인, 이정하 시인을 만났다.

이정하 시인은 1994년에 발간된 시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로 150만 독자의 심금을 울리고, 『우리 사는 동안에』로 200만 독자를 사로잡았다. 현재 9편의 시집과 20편의 산문집 등을 펴내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문화와 함께 걸어온 이천설봉신문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아름다운 시어로 위로와 사랑의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는 이정하 시인의 특별 인터뷰를 진행했다.

■ 코로나19 시국에 독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언어를 주고 싶으신지요?

지치고 힘들수록 시를 더욱 가까이해야 합니다.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물질에 빠져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다 보니 이런 시련을 준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럴 시기일수록 더욱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갖고,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시를 가까이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시기에 시 한 편을 읽으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 중에 ‘내가 앞마당을 쓸면 지구의 한 귀퉁이가 밝아진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처럼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시를 가까이 하면,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아름다운 시어가 마음속에서 살 수 있는 자양분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감정이 메마른 현대인들에게 아름다운 시어를 찾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관심을 가져야죠. 생텍쥐페리는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관심을 가져야 보입니다. 관심을 가져야 그냥 스쳐 가거나, 남이 못 보는 것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나무 하나에도 꽃이 피는 과정이 보이고, 열매를 맺는 모습도 보이고요. 관심을 두고 보면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새로운 것이 보이죠. 관심을 가지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급적 안 가본 길을 가봅니다. 새로운 것을 보려고 가끔 옆길로 새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보이지 않던 꽃도 보고, 새소리도 들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 속에 풍성한 단어, 시어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 시인님의 걸어오신 삶과 시를 대하는 철학을 들려주세요. 

고등학교 입학 후에 문예반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썼습니다. 덕분에 문예 특기생으로 장학금을 받아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요. 우리나라에서 시를 쓰면서 전업작가로 살기가 쉽지 않은데,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잘살고 있습니다.

시란 한 두 사람의 가슴에 들어가서 위안을 주면 충분히 좋은 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고교 시절부터 정말 좋은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내 시를 접한 독자들의 가슴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를 쓰고 있습니다.

■ 대표 시집으로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가 있습니다. ‘너는 눈부신데, 나는 왜 눈물이 겨울까? 너도 눈부시고 나도 눈부신 시가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이에 대한 의견이 있으신지요?

너도 눈부시고 나도 눈이 부시면 더욱 좋겠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라면 굳이 시를 볼 이유가 있을까요? 그 자체로 행복한데 말이죠. 시는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사랑에 아픈 이들을 위해서 쓰고 있는 거죠.

■ 최근 활동 중 『마음시』라는 격월간 시 전문잡지를 창간하셨습니다. 시가 잘 팔리지 않는 시대라고 하는데, 어떤 마음으로 창간하게 되셨는지요?

몇 해 전, 전화를 받았습니다. 군대 고참에게 온 전화였습니다. 벌써 30년 전인 오래된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고참이 말년 휴가를 갔을 때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정도로 집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합니다.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까지 고무신을 거꾸로 신으면서 고참은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다고 합니다. 군대 화장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는데, 마침 화장실 앞에 붙어 있는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라는 시를 보았답니다.

군생활 당시 저는 군대가 너무 삭막하다 싶어서 여기저기 좋은 시들을 붙여 놓았어요. 고참이 그중 하나를 본 거죠. 이후 시를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며, 제가 살려준 것과 다름없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잘살고 있으니 정말 고맙다는 얘기를 하려 전화했다면서요. 이처럼 시가 사람의 마음에 뿌리내린다면, 시는 그 사람의 삶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시가 가진 힘을 믿습니다. 그 힘을 믿기에 『마음시』를 창간했습니다.

■ “시인은 위대하지 않을 수 있지만, 시인의 시는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이처럼 시 한 편이 소중한 생명을 살린 거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시 한 편이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시는 어느 때고 존재할 것입니다.

『마음시』도 그런 책임감을 갖고 시작했습니다. 요즘 평론가나 동료 문인들에게 평가를 받고자 시를 쓰는 시인들도 늘어나면서 시는 점점 어려워지고 대중들의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시와 문학은 전문가들만 위한 것이 아닌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시를 쓰는 것도 거창하거나 대단하기보다는 쉽고 좋은 것으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서 시를 쓰는 이들과 함께 시는 이만큼 좋은 것이니, 하루 한 두 편이라도 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죠. 꼭 특정한 메시지를 담기보다는 시 자체로서 어떤 의미로 남았으면 합니다.

■ 문학인으로서 변화의 시대에 정치인들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태주실 수 있을까요?

정치는 잘 모르지만, 굳이 해야 한다면 사람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감정을 적시는 인문학 중에서도 특히 문학의 대중화에 관심을 가진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책을 사는 사람들도 줄어들었습니다. 작가들의 주된 수입이 인세에서 강연으로 바뀌기 시작했고요. 그런데 도서관이나 학교의 강연료는 일반 기업에 비해 4분의 1도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그런데, 다른 이들은 어떻겠습니까? 담당자들도 지원이 부족해서 죄송하다고 하는데, 이런 곳에 지원을 좀 더 과감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재정지원만큼 중요한 것도 없겠죠.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 밖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과거에는 백일장처럼 문학을 접할 기회가 많아서 동기 부여가 많았는데, 이런 부분도 신경 써주셨으면 합니다. 요즘은 백일장 수상이 입시에 반영이 안 된다고 하니 참석하는 학생들 수가 줄어 동기부여 기회도 줄고 있습니다. 문학적 소양은 곧바로 성취로 나타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도록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시나 문학을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학습 분위기를 만들면, 아이들은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가꿔가는 주역으로 자랄 수 있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아이다운 정서를 키울 수 있도록 동요대회나 백일장 대회 등에 참가해 동기부여를 받도록 이끌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 시인님의 시 중 가슴에 어떤 시를 담고 계시는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제 시를 모아서 정리하다 보니 발표한 시가 900여 편이 넘더군요. 그중에서 스스로 특별하다거나, 애착이 가는 시를 고르기는 어렵군요. 다만 젊은 친구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낮은 곳으로」, 「그대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등이 선정됐습니다.

■ 감성시인, 음유시인, 사랑시인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데, 시인님은 사랑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는지요?

사람의 얼굴만큼 생각도 다른데, 사랑의 정의를 이렇다고 내릴 수 있을까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것이 사랑이라 어떤 것이 사랑이라고 콕 짚어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한 형태는 배려라고 봅니다.

새를 사랑하는 것은 새장 속에 넣어서 자신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새를 새장에서 꺼내 날리는 것이죠. 즉, 자기 마음을 하늘처럼 넓혀서 봐야 한다고 봅니다. 자신은 서녘으로 지면서도 하늘 한 귀퉁이를 붉게 물들이는 태양처럼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봅니다. 사랑을 위하는, 사랑을 원하는, 사랑을 하는 모든 이의 마음에 사랑이 내려오기를 바랍니다.

김숙자 발행인 / 김문수 기자
도움 이인환 출판이안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