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책읽기 지도를 위하여
자녀의 책읽기 지도를 위하여
  • 이천설봉신문
  • 승인 2018.08.1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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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길 만 [동원대학교 명예교수, 문화재 위원]

필자는 지난 717일 초·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를 대상으로 책읽기 지도를 주제로 강연하고 함께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모임에 참여한 이십여 명의 학부모들은 지역사회에서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교육환경개선학부모연합회회원들인데, 청소년 교육과 독서 지도에 매우 열성적이었다. 강연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

책읽기 지도의 비법을 기대할지 모르나, 그 비법은 없다. 다만, 사람에 따른 다양한 방법이 있을 뿐이다. 우선, 거의 모든 학생들에게 해당되는 독서 지도에서 삼가야 할 사항을 말하고 싶다.

첫째, 독서가 좋다느니, 중요하다느니 하는 말을 입 밖에 내서는 안된다. 그럴 경우 독서 흥미는 오히려 사라지기 쉽다.

둘째, 추천 도서를 선정하거나 필독도서를 읽으라고 해서는 안된다. 간혹 학교에서 필독도서를 정하고 읽기 숙제를 내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재미있는 독서를 부담 가는 업무로 만들어버리기 십상이다.

셋째, 독후감을 쓰게 해서는 안된다. 그 대신 아이들 성향이나 취미에 따라, 책 속의 주인공 흉내 내기, 책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읽은 책을 부모에게 자랑하기 등은 무방할 것이나, 이런 일들도 부모가 직접 권하지는 않는 것이 좋다.

 

가정에서 시작하는 독서의 즐거움

독서 지도에서 부모의 역할은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물론 부모가 책읽기를 즐겨야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녀들은 자연스레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자녀가 어릴 때부터 부모와 함께 신문을 즐겨 읽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 자유학기제 수업을 나가 보면, 지식이 뛰어나고 창의력이 넘치는 학생들을 간혹 보게 되는데, 그 배경을 살펴보니 신문을 함께 읽고 대화하는 가족이었다. 그러고 보면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이고, 정보와 지식의 보고이며, 아이디어가 솟아나는 원천이 아닌가.

또한, 아이들이 도서관이나 서점을 친숙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특히, 어린 자녀의 경우 비교적 큰 서점에 데리고 가서 장난감이나 액세서리 또는 맛있는 음식을 사준다든가, 아니면 서점내 놀이방 등에서 신나게 놀 수 있게 해줌으로써, 서점이 즐거운 추억의 장소가 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사실은 학교가 그러한 즐거운 추억의 장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교사 연수를 간 엄마를 따라 미국 학교에서 한 학기를 보낸 적이 있는데, 영어도 안 통했을 아이가 학교생활 일주일 후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빠, 학교 가는 게 매일매일 놀러가는 것 같애!”

놀이가 되고 즐거움이 되는 것이 바로 학습의 본령이 아닐까. 배움이나 공부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것이므로 가장 즐거운 놀이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 교육 실상은 그 반대를 향하고 있는 듯하다. 학교 전체를 즐거운 곳으로 바꾸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가정내 즐거움은 독서를 통한 아이와 부모의 합동작전으로 곧바로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최근 독서가 두뇌 활성화에 효과가 크다는 것이 뇌과학 실험 연구에서 밝혀졌다. MRI 촬영을 통해 관찰한 결과 컴퓨터 게임을 할 때 활성화되지 않던 뇌가 독서를 할 때 다소 활성화되었고, 질문에 대답하려고 할 때, 뇌는 더 활발해졌다. 뇌가 가장 활성화되었던 경우는 본인이 스스로 질문할 때로 관찰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장 효과적인 뇌 활성법은 책의 저자와 끊임없이 따지고 질문하는 독서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독서법은 책의 내용 파악에는 물론이고 두뇌 개발에도 효과가 크다니 일석이조라 할 수 있다.

 

독서 방식의 변화

독서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는데, 우선 음독에서 묵독으로의 전환을 들 수 있다. 고대의 독서는 동서양 모두 청중을 대상으로 한 낭독을 의미했다. 한국에서도 조선시대에는 책을 읽어주는 직업인 전기수가 활약했다. 어느 전기수가 너무 실감나게 소설책을 읽어주다 보니, 한 청중이 진짜 악당인 줄 착각하여 전기수를 칼로 찔러 죽인 살인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혼자 하는 독서에서도 음독은 책 속의 문자를 소리내어 읽음으로써 글의 의미를 내면화시키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고 한다. 서당 교육에서는 천자문이나 사서삼경을 100번 소리내어 읽으며 외우는 것이 중요한 학습방법이었다. 100번 읽다 보면 문리가 트여서 한문 해석은 물론 세상사 이치에도 통달하게 된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16세기 이후 묵독이 일반적인 독서 관행으로 자리잡아갔다. 묵독은 활판인쇄술의 본격적인 발달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정보나 지식의 처리에 적응하는 독서 방법이었다. 이때부터 독서는 사적인 공간, 곧 나만의 공간에서 이루어지게 됨에 따라, 사람들은 각자의 내면세계로 깊이 빠져들 수 있었고,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고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서 독서법에 전혀 새로운 방식이 나타났다. 디지털 텍스트 읽기의 등장이다. 전자책 등으로 읽는 독서는 일관되고 중심이 있는 기존의 종이책 읽기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띠게 된다. 읽는 중에 궁금한 용어나 개념을 클릭해서 새로운 내용으로 들어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저자가 만들어놓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읽는 순서를 독자가 임의로 수시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독서는 논리적이고 일관된 사고체계보다는 감성적이고 파편화된 즉각적인 반응을 중시하게 해준다. 이제는 저자가 아니라 독자 중심의 독서를 하게 되고, 아날로그 텍스트에서처럼 중심 키워드는 사라지고, 독자에 의해 선택된 키워드가 독서의 방향을 이끌어가게 된다.

 

디지털 시대의 바람직한 독서 방식

이러한 디지털 시대의 바람직한 독서 방식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아날로그 독서의 장점과 디지털 텍스트 읽기의 장점을 살려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독서의 장점인 검색과 건너뛰기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아날로그 독서의 장점인 논리력과 비판적 해석능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디지털 텍스트 읽기에서 얻은 정보를 지식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아날로그 독서 방법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하고, 아날로그 독서에서 부족한 검색과 광범위한 조사 등은 디지털 텍스트 읽기를 통해서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디지털 텍스트 읽기에서 일어나기 쉬운 피상적이고 파편적인 읽기를 극복해야 한다.

또한, 종이책 독서이든 디지털 독서이든 독서 만능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독서와 두뇌 개발은 최고도로 했지만, 사회적 악으로 지목되어 지탄받는 인사들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또한, 나홀로 독서에만 깊숙이 매몰되어 극단의 고립생활에 빠져드는 경우도 있다. 독서 지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발전이라는 대의 속에서 협동하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함께 읽기 운동을 제안한다. 한 가족 안에서, 또는 크고 작은 모임이나 공동체 내에서 함께 읽으며 협동정신을 키워 나가는 독서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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